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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 칼럼]산티아고 순례길 여행 27일차 - 삶의 경계에서 선택한 길

뜨리야까스떼야(Triacastela)에서 사리아(Sarria)까지

(조세금융신문=송민재)

 

언제나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파울로 코엘료

 

갈림길에서

뜨리야까스떼야(Triacastela)에서 사리아(Sarria)까지 18km 정도 걷는 여정이다. 사모스(Samos) 베네딕트회 수도원을 가보고 싶은 마음과 5km 줄여서 좀 더 일찍 사리아(Sarria)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다, 비가 오면 사모스(Samos)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기준으로 삼았더니 아침에 비가 오지 않아 산실(San Xil)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산실(San Xil)을 거쳐 가는 길이 원래 길이기도 하지만 오르막 산 길이라면 풍경이 더 볼만 할 것 같아 선택한 길이다.

혹여 다시 올 기회가 있다면 베네딕트 수도원을 방문해 보고 싶다.

  

 

▲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내려오다 131km 남았다는 표지석을 보면서 산실로 가는 오른쪽 길로 접어 드니 멀리서 해가 떠오르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 정보: 뜨리야까스떼야(Triacastela)에서 사리아(Sarria)까지 >

뜨리야까스떼야(Triacastela)에서 사리아(Sarria)까지 18km 구간이다. 뜨리야까스떼야(Triacastela)에서 두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산실(San Xil)로 가는 길 표시를 따라 오른쪽으로 접어 들면 사리아(Sarria)까지 산길을 따라 Alto de Ricocabo까지 올랐다가 사리아까지 내려가는 전통 길을 따르게 된다. 왼쪽으로 가면 사모스(Samos)를 지나가는 길을 따라가게 된다. 사모스로 가는 길을 택하면 도로와 나란히 놓인 보행자 도로를 따라 쾌적하게 걸어갈 수 있으나 사리아까지 걷는 거리는 5km 정도 늘어난다. 사모스에는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사모스 베네딕트회 수도원이 있다. 사모스 베네딕트회 수도원은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이면서 갈리시아 문화의 심볼로 여겨지는 곳이다.

수도원을 보려고 사모스 행 길을 선택하는 순례자들이 많다고 안내 책자에는 되어 있었지만 이 날 순례자들은 산실 쪽으로 많이 가는 편이었다.

 

 

▲ 길을 걸어가면서 해가 조금씩 높아지면서 밝아진다.

  

▲ 산실에 도착하기 전에 작은 농가를 지나간다.

  

▲ 해가 높이 떠 오르고 파란 하늘이 보이더니 다시 구름 낀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늘이 시시각각 변하는 동안 오르막 길이 계속되고 드디어 산실 입구까지 도착했다.

 

 

산실(San Xil)

4km 정도 걸어왔다. 출발하고 조금 걷고 나서는 오르막이 시작하더니 San Xil까지 계속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이 마을에는 서비스 시설이 전혀 없다. 그냥 지나가는 것 외에는 별다르게 할 수 있는게 없는 마을이다.

 

  

▲ 길 약간 아래 쪽에 집들이 보인다. 별다른 서비스가 없는 마을인 데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대로 지나간다.

 

 

▲ 산실을 지나 1~2km 정도 계속 오르막을 따라 오는 동안 하늘이 변화무쌍하다. 오르막 길이긴 하지만 천천히 걸어가면 그렇게 힘들 정도의 오르막이 아니다.

  

Alto de Riocabo 언덕

Alto de Riocabo까지 오르막이더니 본격적으로 내리막으로 바뀐다. 산실에서 1.7km 정도 걸어왔다. 별다른 마을이 안보이고 정상 언덕 지점이다.

  

 

▲ 전날에는 커플이 함께 걷는 것을 봤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혼자 있다. 소가 풀을 먹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있다. 이 순례자가 아스트로가로 갈 때 고생하고 등산화로 신발을 바꾼 순례자이다.

 

 

▲ 내리막 길에 앞에 서서 사진도 찍고 잠시 서서 휴식을 하는 중에 가끔 봤던 남미 쪽 여성으로 보이는 순례자가 반가워하며 다가오더니 “Are you ok?”라고 묻는다. 그리 크지 않는 동양인이 남들보다 큰 배낭에 카메라 보조 가방은 옆에 달고, 큰 카메라는 가슴에 걸은 채로 서서 쉬고 있으니 힘들어 보였나 보다. 괜찮다고 하고 물통 꺼내는 걸 도와주고 인사를 한 뒤 먼저 가게 했다. 그 순례자의 진심 어린 표정과 따뜻한 인사말은 그 후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는다.

   

▲ 자전거가 갈 수 있는 길과 교차하는 듯 큰 길에서 좁을 오솔길로 바뀌면서 색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Montian

Alto de Riocabo 언덕을 지나 2~3정도 걸어와서 도착한 마을이다. 마을에 대한 별다른 소개 자료가 없어서 알베르게나 상점 정보가 없다. 조용한 마을에 까미노를 안내하는 노란 화살표만이 눈이 띈다.

  

 

▲ 마을은 조용하다. 까미노 화살표가 한꺼번에 양쪽 벽에 표시되어 길을 잘 못들 염려가 없다.

  

▲ 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 서고부터 500m 정도 거리마다 표지석이 나타나고 남은 거리가 표시되어 있어 목적지에 조금씩 가까워 지고 있음이 실감이 더 나는 장점이 있는 반면, 마을에 대한 안내 표시판이 없어서 때론 어떤 마을인지 어떤 시설이 있는지 알기 힘든 게 조금 불편하다.

 

 

Furela

날씨가 흐렸다 맑았 다를 반복하면서 비는 오지 않는다. Furela라는 마을을 지나가니 거진 반을 왔다. 이 길에 있는 마을들은 소를 키우는 전형적인 농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Furela 역시 예외가 아니다. 마을에 다 와서는 도로 위를 한 떼의 소가 지나가니 차도 사람도 서서 기다렸다 간다.

마을에는 상점과 Bar를 겸한 곳이 한 곳 있다.

  

 

▲ 소 떼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마을에 접근하니 도로를 따라 가는 길이 아니라 마을을 관통하는 길로 까미노 표시가 안내하고 있다. 마을 안을 지나 벗어나려고 하는 곳에 왔더니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진다. 얼른 우비를 쓰고 다시 출발한다.

 

 

▲ 도로 옆으로 난 보행 도로를 따라 걸어가다 도로와 멀어지는 쪽으로 길이 굽어진다.

 

 

Calvor

Calvor라는 크지 않은 마을에 도착했다. 사리아까지 6km 남은 거리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끝에 바가 하나 있어 커피도 한잔하고 잠시 휴식하고 난 뒤 사리아로 출발한다.

이 마을에는 알베르게가 하나 있다고 한다.

 

 

▲ 사리아까지 도로를 따라 계속 걸어가면 되는 길이다. 한참 걸어가는 동안 녹색 옷을 입은 순례자가 지나가면서 어디서 왔냐고 물어본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자기는 미국에서 왔다고 한다. 대체로 미국 사람들은 약간 유쾌 하면서 수다스러운 느낌이 든다. 사진 찍어도 되냐고 하니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해준다.

 

 

 

사리아(Sarria)

사리아는 아주 큰 도시는 아니지만 까미노 루트 중 갈리시아 지방에서는 2번째 큰 중소도시 규모의 도시이다. 그리고 순례길 전체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순례자 증서는 100km 이상을 걸으면 발급해 주기에 많은 순례자들이 사리아에서부터 순례를 시작하기도 한다. 1주일이나 10일 구간의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을 안내하는 여행 코스는 대부분 사리아에서 시작하는 프로그램이다. 전체 순례자의 수가 매년 늘어나고 있고, 비례해서 사리에서 출발하는 순례자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더불어서 알베르게도 계속 생겨나고 있으니 이 도시를 방문하는 방문자는 항상 최신 안내서를 구비할 필요가 있다.

최근까지는 19개의 알베르게가 있다고 안내되어 있고 위치로 다양한 곳에 있다. 미리 정해 놓은 알베르게가 없다면 까미노의 루트를 가다 보면 도시를 벗어나기 전에 길을 따라 쭉 이어져 있으니 선택해서 들어가면 된다.

. 

 

▲ 사리아에 가까워지면서 동행하게 된 한국 순례자와 같은 알베르게를 구했었다. 어머니가 나중에 들어오신다고 2층에 4인 방을 달라고 했는데 어머니가 좀 더 걸어간다고 하면서 숙소 비용만 지불하고 나간 덕분에 오랜만에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혼자 독방에 있게 되었다.

 

 

▲ 성당에 예배를 보는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더니 숙소를 정한 뒤 짐 정리까지 마치고 도시를 구경하러 나오니 사람들이 모여 있는 숫자가 줄어 들었다. 성당 앞과 뒤를 둘러보고 안에까지 들어가 본다.

  

▲ 성당 내부 모습

   

▲ 왼쪽 건물이 시립 알베르게이다. 주방이 없고 Wi-Fi가 안되는 것은 갈리시아 지방 다른 주립 알베르게와 동일하다. 이 앞에서 필요한 물품을 사서 들어가는 미샤와 마르코, 까를로, 론을 만날 수 있었다.

 

 

▲ 싸이러스를 다시 만났다. 엘아세보에서 헤어진 이후 마주친 적이 없었는데 사리아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싸이러스.를 만났다. 사진을 찍어서 보내 준다고 했는데 메일로 제대로 전달이 안 된 듯 하다. 다시 만날 순 없고 보내주지 못한 사진이 아쉽다.

  

▲ 식사를 하기 전에 도시 위까지 올라와봤다. 도시 위로 올라오면 전망대를 통해 도시 전경을 조망할 수 있다.

  

▲ 알베르게 근처에 있는 식당에 가니 식사를 하는 사람이 없다. 식사가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된다면서 자리를 마련해 준다. 스페인 사람들은 대체로 저녁 식사를 늦게 하는 편이다. 6시쯤 가면 현지인들이 저녁 식사를 하는 경우를 별로 보지 못한다.

 

 

 

오늘의 일기

조금씩 산티아고까지의 거리가 줄어들면서 빨리 도착했으면 하는 마음도 들기도 하고,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함께 교차한다. 그러면서 뭔가 표현하기 힘든 묘한 무게 감이 마음 속에서 침묵으로 자리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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