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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비록㉒]국세청 세무조사 시대별 변천사 재조명하다<上>

(조세금융신문=김종규 논설고문 겸 대기자) 개별보상 없는 강제적 금전급부가 조세라고 정의한다면, 재산권을 제약할 수도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게 국세행정이다. 때문에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납세자는 조세를 회피하거나 탈세 등의 방법으로 그 부담을 최대한 적게 하려는 심리적 작용이 솟구치기 일쑤다.


납세자에게 경제적·심리적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기업 활동의 위축까지도 두 말할 것 없다. 심하면 기업의 흥망성쇠까지도 가늠 안 되는 게 세무조사의 위력이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과세행정의 공정성과 형평성이 무너지면 개인별·그룹별 조세저항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납세자 의사에 반한 공권력 행사가 세무조사라면, 납세자 권리도 조사 못지 않게 기본을 갖추어 나가야 한다. 내용과 절차를 제도화하고 공개하는 것만이 세무조사의 투명성을 제고시킬 수 있으리라 본다. 공감대 형성이 최적화된 상황에서만이 신뢰를 쌓아올릴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복조사 금지조항 등 세무조사에 관한 규정들이 국세기본법에 신설, 법제화됨은 세무조사의 중요성을 감안한 제도적 안전장치라 하겠다. 1989년 제정된 세무조사운영준칙은 조사착수 예고제, 중복조사 금지, 통합조사 원칙 등에 관한 규정을 둠으로써 납세자 편의 증진에 따른 권익보호를 보완·강화한 것이라고 보겠다.

 

1996년의 ‘납세자 권리헌장’ 탄생은 조사권 남용 금지규정에까지 확대, 적용됐고 공정 세무조사 확인제 시행으로 강압적 조사 행위 금지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조사공무원이 지녀야할 절대 청렴성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보석 같은 존재다. 시대별 세무조사 변천사를 재조명하는 이유다.

 


1966~1971년 시기는 원칙 없는 탈세조사로 기업경영의욕 저하‥세수 역효과
대통령 지시각서(대비정 1233, 3-69호)하달 혼란스럽던 사찰기능 일원화 정비
1962년부터 추진된 경제개발계획에 따른 투자재원 충족은 세수증대 행정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세무행정 강화가 요구됐고 1966년 국세청 발족과 함께 세원개발과 탈세방지를 전담하는 조사국을 설치하기에 이른다.


국세청 발족초기인 1966~1971년 시기에는 탈세 자진신고 기간을 설정할 만큼 탈세풍조 개선에 집중했다. 대기업·고소득층에 대한 초기 국세행정의 탈세조사(초창기 사용해온 세무조사를 이른 통칭)가 판을 쳤던 이유다.


세무사찰을 강행, 세수증대를 꾀했고 세(稅)부담 공평성 실현과 더불어 납세풍토 쇄신에도 크게 기여했다. 부과과세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국세청은 매년 모든 납세자를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실시해야 했다. 바꾸어 말하면 납세의무를 확정하기 위한 절차적 조사였는데, 그 속내는 세수증대책이 일차 목표였다.


검찰·경찰 등 외부 수사기관이나 감사기관에서 원칙 없는 탈세조사를 수행함으로써 기업의 경영의욕을 저하시킴은 물론 세수증대에도 역효과를 불러왔다. 안 좋은 사회적 여론은 국세청이 풀고 가야할 현안과제로 부각되기도 했다.


1966년 4월 15일 ‘세무사찰 일원화’ 조치가 대통령 지시각서(대비정1233, 3-69호)로 발효됨에 따라 세무사찰 기능을 정비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이를테면, 여러 수사기관은 탈세정보를 정보단계에서 그대로 국세청에 이첩하면, 국세청은 이를 지체 없이 처리했고 그 적정성 여부를 감사원이 감사하도록 시스템화했다.


국세청 발족 초기 녹색신고제도 및 세무사찰 일원화에 대한 사전조치로 납세자가 자진 신고하는 경우 1966년 6월 17일 이전에 행한 모든 조세범칙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납세자가 스스로 과오를 시정할 기회를 부여한 적이 있다. 이른바 수정신고기간 설정이다.


첫 번째 자진신고 결과는 총 771건에 2억8100만원의 신고실적에 그쳤다. 그 해 7월 25일 당초 8월 초부터 실시 예정이었던 88개 업체를 대상으로 사상 최대의 세무사찰에 돌입하게 된다.


상공업계 대표들은 세무사찰의 전면 중단과 탈세관련 자진신고기간의 연장을 건의했다. 건의를 받아들인 국세청은 불성실 신고 업체를 제외한 모든 기업에 대한 세무사찰을 중지하게 된다.

 

두 번째 자진 신고를 진행한 결과 9,794건에 세액으로는 10억5900만원의 세수실적을 기록하게 됐다. 세무사찰 일원화 이후 국세청은 1966년 6월 훈령으로 사찰사무운영요강을 제정하고, 세무사찰을 개별사찰과 기동사찰로 구분, 집행했다.


비상설연합조사반 신설 70개 업체서 57억여 원 포탈세액 추징
조사국 직제로 조사관실 출범 1177개 업체서 822억 추징 성과
1972~1981년까지 10년간의 시기는 경제개발 재원조달시기로 볼 수 있겠다. 국세청은 1972년 유능한 조사요원으로 편성된 대기업조사 전담 기구인 비상설연합조사반을 신설했다. 정예 조사요원에 의한 장기 정밀조사 체계를 갖춘 상설 조사반은 각종 세무조사로 납세자의 불편과 기업 활동의 위축 등을 완화하기 위해 통합세무조사 방식을 채택했다. 법인조사 외에도 부가가치세 경정조사, 일선 법인세 조사 성과업무 점검 등 각 분야에 걸쳐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본청과 지방청 근무자 중 유능한 조사요원을 동원형식으로 운영해온 비상설 연합조사반을 탄생시켰다. 외형 10억원 이상의 대기업 중 결손신고를 한 1971 사업연도분 법인세조사에 우선 투입했다. 70개 업체로부터 57억원의 포탈세액을 추징, 과소신고 업체에 경종을 울렸다.


정예 조사요원에 의한 장기 정밀조사 체계를 갖춘 상설조사반은 각종 세무조사로 인한 납세자의 불편과 기업 활동의 위축 등을 완화하기 위하여 통합세무조사 방식을 채택했으나 장기출장형식의 운영방식은 분명 한계였고, 드디어 문제점으로 불거졌다.


이에 따라 국세청은 1979년 직제개편을 단행했고 직세국 정식기구로 출범시켰다. 새로 탄생한 조사관실은 1981년까지 3년 간 외형 50억원 이상의 제조·광산·건설 및 서비스업과 외형 100억원 이상의 기타업종 1,177개 업체를 조사해 모두 822억5500만원의 세액을 추징했다.


조사국 사찰요원‥탈세와 관계 형성된 지하경제 척결에 역점
지하경제 특별조사반 확대, 지방국세청 조사2국 모태로 직제화
1980 사업연도부터는 법인세가 신고납세자로 전환됐다. 이에 따라 1981년 1월 법인종합관리규정이 시행됐고, 신고관리업무와 조사업무로 분리 운영하게 됐다. 일반조사는 각 부과 분야에서 선정해 통보된 조사대상자의 집행만을 담당하게 했다.

 

정기적인 일반조사 업무의 기본방향이나 기획업무는 각 세목별 소관국의 조사지침을 따르고, 조사관실은 조사기법의 개발, 조사요원의 자질향상, 조사성과의 분석, 세무조사의 신뢰성 제고 및 부조리 차단 등 세무조사의 효율적 집행과 납세자로부터 신뢰회복 등에 역량을 기울였다.

 


1983년 국세청 조사국 인력을 지하경제특별대책 체제로 전환해 M그룹의 거액 사채자금 사취에 의한 탈세사건과 같은 지하경제를 포착했다. 1983년 7월부터 서울 및 부산 국세청에 임시로 편성 운영해오던 ‘지하경제 특별조사반’을 확대, 개편했다.


1984년 2월 모든 지방국세청에 특별조사 정규조직으로 흡수했고, 지방국세청 조사2국의 모태가 됐다. 특별조사반은 조사국장 지휘아래 M그룹 김 모 탈세사건 세무사찰을 담당했으며, 1987년 B 상선 탈세사건과 같은 반사회적인 경제행위자에 대한 특별조사에서도 큰 역할을 해냈다.

 


조사국 전산조사전담조직 신설 세무조사에 전산조사기법 활용
법인관리체제로 전환, 1992년 대기업 세무관리에 행정력 집중
국세청은 산업구조의 고도화·전문화 그리고 정보기술의 발전 등 조사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직면한다. 이는 곧 국세행정 각 분야에서 업무전산화 및 행정개혁추진의 시발점이 됐다.

 

1992년부터 1999년까지 기간을 국세행정 개혁시기로 보아온 이유다. 업종별 조사기법을 체계화하는 등 조사업무 전문화를 위한 가속화가 진행되는 시기였다. 전부조사의 보완적 기능을 가진 부분조사를 도입, 납세자의 불편을 줄여나갔다. 불성실 신고 때문에 일고 있는 오류 및 탈루를 시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해 7월에는 조사국에 전산조사 전담조직을 신설, 세무조사 때 전산조사 기법 활용을 시작하게 된다. 1995년에는 세무서에 정보수집 전담부서인 세원관리계를 신설, 광범위한 정보자료수집체계의 기반을 구축해 나갔다.


또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자산운용 행태변화에 맞춘 세원관리에 행정의 중심축을 두게 된다.
무자료 위장·가공거래 그리고 소득 없는 주식거래 등 실명거래를 회피하는 음성·불로소득 척결에 역량을 다 쏟았다.

 


IMF 외환위기 당시인 1998~1999년에는 음성탈루소득자 과세가 국세행정의 중심에 서게 된다. 1998년에는 4차례에 걸친 음성탈루 소득자 조사를 통해 7,154명으로부터 1조5904억원을 추징했고 1999년에는 5,155명에 대해서는 2조5019억원을 추징, 511명을 검찰에 고발하고 23명을 통고 처분했다.


변칙상속·증여·세금계산서 수수질서 문란자, 변호사, 의사, 연예인 등 전문직 종사자가 많았고, 국제거래를 이용한 탈세행위자, 투기성 부동산 거래자 등으로 조사대상이 드러났다.


[국세청 비록 23편]이 5월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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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일 칼럼]‘갑질’은 영혼의 홀로코스트
(조세금융신문=김우일 대우M&A 대표) ‘갑질’의 무분별한 횡포로 사회 전반의 여론이 들끓고 있다. 갑질이란 권력 관계에서 우위의 ‘갑’이 권리 관계의 하위에 있는 ‘을’에게 하는 비정상적, 부당, 압박행위를 통칭한다. 대기업의 협력회사에 대한 갑질, 프랜차이즈의 가맹점에 대한 본사의 갑질, 교수가 학생에게 하는 갑질, 군대, 경찰, 기업 등 조직 내에서의 갑질은 사회 전반적으로 광범위하고 잔인하게 자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구조란 게 어쩔 수 없는 수직적 관계의 연결고리라면 갑과 을의 위치가 필연적 존재사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연결고리라 함은 직무상 야기되는 위치의 함수관계이기 때문에 직무를 넘어서는 비정상적, 부당, 압박은 ‘갑을’의 관계를 빙자한 또 다른 범죄임이 틀림없다. 을이 느낀 그 피해 후유증은 정신적 살인행위에 버금가는 만큼 크다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염두에 둬야하겠다. 갑질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른바 출세를 한 소수층이고 갑질을 당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 소수층의 하위구조에 있는 대다수의 국민에 해당한다. 소수가 눈에 보이지 않는 ‘갑질권력’ 이라는 칼로 대다수의 영혼을 기분대로 입맛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