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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비록㉝]내가 보아온 국세청, 국세청사람들<Ⅱ>

(조세금융신문=김종규 논설고문 겸 대기자) 국세청 사상 처음으로 호남출신 국세청장이 탄생했다. 장본인인 안정남 전 국세청장은 주위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제2의 개청’을 선언해서 또 한 번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김대중 국민의 정부 출범과 함께 국세청 차장(1998.3.14.~1999.5.25. 역임)에 임명되어 세정개혁의 청사진을 주도했다.

 

1999년 5월 26일부터 2001년 9월 7일까지 재임한 12대 안정남 국세청장(훗날 국토교통부 장관 역임)은 조직은 물론 토착화되어 버린 세무비리 커넥션 차단을 위한 배팅을 거침없이 패대기쳤다.

 

인사개혁의 칼을 뽑아든 안 국세청장은 향피(鄕避)제도를 인사기준에 반영, 연고지 전보인사가 되지 않도록 간부급 인사부터 적용·집행했다. 경북 출신의 이재광 국장을 광주지방국세청장 자리로, 호남 출신 이주석 국장을 부산지방국세청장으로 각각 전보·발령했다.

 

향피제를 반영한 대표적인 첫 인사발령이 발동된 것이다. 이어 줄곧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로 새판짜기에 들어갔다. 안 국세청장은 취임 4개월여 만에 국세청 조직을 탈바꿈시키는 대대적인 조직개혁을 단행하기에 이른다.

 

그 중 하나가 중부지방국세청과 경인지방국세청을 통합, 1999년 9월 1일 중부지방국세청으로 단일화했다. 35개 세무서를 통·폐합했고, 99개 세무서만을 존치시켰다. 99개 세무서 존치는 1999년도에 이뤄진 조직개편에 의미를 담았다는 후일담이 조금은 코믹하면서도 걸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외환위기가 불어 닥친 바람에 정부 조직이 구조조정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생긴 통·폐합 조치였다. 그러나 20년 만인 2019년 4월에 경인지방국세청이 다시 신설, 확정돼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변화무쌍한 사회적 무리수가 곧 잘 반영되어 왔던 국세청이다 보니 그동안 굴절되어 온 국세청의 민낯을 보는 듯하다.

 

안 국세청장, 부동산 투기의혹 불거져 건교부 장관 영전 20여일만에 물러나

제연희 첫 여성세무서장 배출시킨 손 국세청장, 썬앤문 감세로비 의혹 사건에 연루

 

세목별 조직에서 납세자 중심의 기능별 조직으로의 전환이 명분인데, 세무공무원과 개별 납세자 사이에서 빚어질 세무비리 가능성이 많은 지역담당제 전면폐지가 특장 중의 하나로 꼽힌다. 안 청장은 부동산 투기의혹 등으로 건교부 장관으로 영전된 지 20여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호남출신 청장 중의 두 번째 청장이 된 13대 손영래 국세청장은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세정개혁의 내실화 차원에서 ‘홈택스 시스템’을 본격 가동, 선진세정의 기틀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국세청의 위상과 신뢰성을 높이고 강한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직원들의 질적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그래야만 조사결과에 대해 납세자가 승복하고 만족할 수 있다”고 감동 수준의 서비스 제공을 강조해온 손 국세청장이다. 6급 이하 직급을 조정해서 대폭적인 승진인사를 집행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국세청 첫 여성세무서장으로 제연희 서장을 배출시킨 손 국세청장은 ‘썬앤문’ 감세로비 의혹에 연루되어 고초를 감내하던 중 모친이 별세했다. 모친 영전 앞에서 그야말로 통곡으로 울부짖는 손 청장의 모습을 본 지인들은 “눈뜨고 볼 수 없었다”라고 그 당시를 회고한다.

 

세 번째 호남출신 청장으로 이용섭 관세청장 출신이 국세청장 자리에 앉게 된다. 노무현 정부의 첫 국세청장이 된 14대 이용섭 청장은 2003년 3월 24일부터 2005년 3월 14일까지 재임했는데, 국회 인사청문회를 사상 처음으로 거친 검증된 국세청장이 됐다. “인사혁신 없는 혁신은 성공할 수 없다. 조직을 변화시키는 것은 결국 사람이고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인사다”라는 세정혁신 철학을 강조해왔다.

 

취임 8일 만에 전자인사시스템과 청장핫라인을 가동할 만큼 업무에 긍지와 열정이 남달랐다. 이러한 시스템 덕분에 재임기간 중에는 사실상 외부 인사청탁이 사라졌다는 평판이 나올만하다는 여론이 압권이다.

 

“차량만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안전거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중요한 나라의 일을 하는 사람은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안전거리가 필요하다”는 소신을 밝힌 바도 있다. 특히 이 청장은 접대비실명제 시행과 관련 기득권의 저항과 비난을 뚫고 뚝심으로 밀어붙여 소기 목적대로 성사시켰다는 일화는 업적으로 남는다.

 

부하 사랑도 남다른 이 청장은 일 잘하는 직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뒷얘기는 에너지가 넘친다. 이용섭 14대 청장은 세무공무원 출신으로는 보기 드물게 2018년 민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광주광역시장으로 당선되었고, 현재 시정을 알뜰살뜰 살피고 가꾸어 나가고 있다. 민선 광역시장의 자리라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일찌감치 공인회계사 자격까지 취득한 10대 임채주 국세청장은 국세청 엘리트군(群)의 한 사람이다. 1995년 12월 26일부터 1998년 3월 8일까지 재임한 임 청장은 모든 직원의 전산 요원화를 위해 기관 단위로 교육을 실시했고, 매달 한두 차례 수시로 시험을 실시했다. 그리고는 시험 결과를 개인 인사와 관서 평가에 반영하는 등 시대조류를 내다보는 전문화 자질향상에도 애써왔다.

 

세목별로 분류되어 있는 일선세무서 조직을 기능별로 전환하는 조직개편도 시도했다. 이에 따라 신고·조사·징수 등의 ‘팀’으로 운영해 업무능률을 제고시켰으며 과세전 적부심사제도를 완전 정착시켰는데, 임 청장의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불법대선자금 국세청 정통성 아주 나쁘게 쓴 전대미문의 사건 '충격'

임 청장과 이 차장 연루된 세풍(稅風)사건, 정치권력 앞에 과세권이 무참하게 흔들린 굴욕적 사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참이다. 당시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 측근들이 기업으로부터 대선자금을 불법 모금한 사건이 터졌다. 이른바 세풍(稅風)사건이다. 당시 검찰이 밝힌 임채주 10대 국세청장이 저지른 업체로부터 대선자금 불법모금 혐의는 현대, 대우, SK로부터 각 10억원, 동아건설 5억원, 극동건설 3억원 등 38억원을 걷어서 한나라당 서상목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임채주 10대 국세청장은 수사과정에서 서 의원이 100여개의 기업체를 대선자금 모금대상으로 지목했다고 진술함으로써 조성한 선거자금이 무려 5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검찰은 내다보았다. 불법 모금한 대선자금이 국세청의 ‘정통권한’을 아주 나쁘게 쓴 대표적 정치적 비리사건이다.

 

이 후보의 친동생 이회성과 서상목 의원 등 이회창 후보의 최측근들이 국세청을 동원해서 대선자금을 모금한 사건이다. 당시 국세청장이었던 10대 임채주 국세청장과 10대 이석희 차장이 깊숙하게 연루된 사건으로 그 전모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된다. 이 사건 수사 결과는 국세청 고위당국자의 개인적인 일탈로 마무리됐다. 김대중 정부 초기부터 세풍사건 수사가 시작됐으나, 정치권력 앞에 과세권이 힘없이 흔들렸던 전대미문의 정권과의 유착비리 사건으로 기록되게 됐다.

 

"차량만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안전거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중요한 나라 일을 하는 사람은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안전거리가 필요하다"

 

세법 개정을 통해 갑종근로소득세와 을종근로소득세에 대한 원천징수 업무가 강화되던 시기였다. 이는 근로소득에 대한 ‘원천세 밭’을 깊고 넓게 과세 현실화한 것이다. 이를 위해 국세청은 우선 대도시 관내 세무서에 원천세과를 신설하고 대대적인 원천소득에 대한 징수작전에 들어갔다. 그러다보니 소규모 자영업자 월급쟁이에게까지 월급에 세금을 매기게 됐고 이 때문에 조세저항 같지 않은 저항이 개별 영업장별로 여기저기서 슬금슬금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보를 접한 나(필자)는 본청 법인세과에서 근무하다가 용산세무서 원천세과로 전보, 근무 중이던 임채주 원천세과장(훗날 10대 국세청장 역임)을 취재원으로 내정하고 취재 방문했다. 용산서는 미8군과 군무원 근무자들이 많아 원천징수대상자가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세무서 중의 하나다. 모모 자영업자의 제보는 이렇다. 지금까지는 세금을 안 걷었는데, 갑자기 종업원의 월급에서 세금을 떼서 세무서에 내라고 통보가 왔다는 것이다. 업소 입장에서 보면 뜬금없이 원천징수의무자가 된 것이다.

 

“임 과장님, 이 업소 종업원에 대한 과세근거 좀 제시해주세요.”

임 과장은 갑자기 정색을 하면서 “김 기자, 과세근거를 말해 달라고 말하지 마세요. 과세근거를 제시하는 것은 대외비라서 공개할 수 없어요.”

 

“납세자가 납득이 안 간다고 할 때 어떻게 설득하는지 말해 주세요”라고 되물었더니, “억울하면 이의신청 등 불복청구 절차를 밟으라고 전해 달라”고 내뱉듯 말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버린다. 소위 ‘노코멘트’다.

 

납세현장에서는 지역담당세무공무원이 곧 '세무서장'

일선 중간관리자들의 구습잔존 형태 '세정개혁의 물' 혼탁하게 만들기도

 

새내기 기자인 나는 어리둥절했다. 순간 평소에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세무공무원의 권위의식을 떠올렸고, 과세권자가 납세자에게 군림하는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절망감을 감추지 못 했다. 군림하는 세무공무원의 진수를 본 듯하다. 아날로그 시대의 고질적 병폐였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 속에서 보면, 세무공무원이 납세자에게 행한 ‘전형적인 군림’이라고 대못을 내려치고도 남는 행위다.

 

국세청 본청 기획관리관실 이 아무개 서기관이 B세무서장으로 전보·발령됐다. 본청 근무 때 한 사무실에서 일하던 여직원을 서장부속실 비서로 전보·발령 시켜놓고 함께 일하게 만들었다. 여기서부터 낌새가 이상하다는 내부 ‘참새떼들’의 입방아에 그간의 정황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결재서류 직인을 부속실 여직원에게 맡기고, 서장 부재중에는 그 여직원이 결재까지 했다는 ‘카더라 통신’이 여기저기서 풍문으로 들려왔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시쳇말로 직장 내 성폭력 관계가 아닌지 의문이 갈 정도로 일파만파, 그야말로 눈사람이 만들어졌다. 마침내 부속실 여직원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퇴직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고, 이 아무개 서장도 모 기업의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전문을 끝으로 그들만의 ‘미투’(Me Too)의 막이 내려졌다.

 

세공무원의 자질이나 품격은 납세자 대면조사 과정에서나 상담 등에서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다. 소통하고 혁신하는 세정을 펼치기 위해서는 상생하고 포용하는 세정을 구현해 나가야 한다는 데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이를 위해 세무공무원들은 ‘민생지원 소통추진단’을 본격 가동, 잘못된 과세로 납세국민이 불편하지 않도록 체계적 개선방안을 강구하자는데 동의하고, 일로매진하고 있다.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국세청 개청 이념은 하나임이 분명하다. 공정·공평부담을 최우선으로 행하는 납세편의 제공이다. 그리고 재정역군으로서의 세원과 세수관리를 촘촘하게 작동 중에 있는 ‘진행형 국세청사람들’인 것이다.

 

역대 국세청장들의 취임 일성이 하나같이 세정개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도 모두 다 이 때문이라고 방점을 찍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의 핵심인 일선관서 중간관리자들의 구습에 따른 의식과 행태가 잔존하는 사례가 있다면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방죽 물을 더럽힌다’는 꼴이 왜 아니겠는가.

 

인정과세할 때다 보니 지역담당자가 현장에서는 곧 세무서장이 된다. 이 같은 상황은 오랜 국세청의 관행이기도 하지만 현장세정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관용을 베풀어도 무방하리라 본다. 납세자의 권형지수가 지역담당자의 경험과 ‘전기대비’ 비율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과표가 잡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10일 오전 11시 추경석 전 국세청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향년 85세). 故 추경석 전 국세청장은 1959년 재무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 국세청 조사국장, 서울 국세청장, 국세청 차장을 거쳐 1991년 4월부터 4년간 제8·9대 국세청장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정수자 여사, 아들 추승우(스톤파인얼라이언스 이사), 재연, 재희, 희정 3녀와 맏사위 김원욱(GE Power 기술총괄), 둘째 사위 이지용(JRW 대표), 셋째 사위 강승준(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이다.

 

[추도사]

 

‘국세청의 큰 별이 지다’

 

故 추경석 전 국세청장 영전에서

 

지난 2월 10일 추경석 전 국세청장(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타계했다는 비보는 나(필자)에게는 큰 충격이었어요.

 

1970년대 초 나는 국세청 본청 출입기자로 활동하면서 외국인세과 3계장이었던 추경석 사무관을 처음 통성명했지요. 훤칠한 신장에다 미남형이면서 스피치도 나지막하면서도 부드럽게 잘 구사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그런데 어찌하여 가시다니요. 엊그제처럼 당신의 친화력이 아직도 끈끈하게 배어 있는데요. 당신은 국세청의 큰 별이었고, 큰 형님 같은 롤모델다운 공복이었어요. 혼돈의 시기였던 그때, 당신은 오로지 국세청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었지요. 국세청 조직을 흔들려는 외부세력과 부단

히 투쟁하셨고, 개청 이래 25년 만에 내부 국세청장 승진의 길을 최초로 열었던 기록이 또렷이 기억나게 하네요.

 

“국세청에서 내부 승진한 첫 청장이 된 것은 나 개인을 넘어선 조직의 명예였다”고 할 만큼 내부 승진의 전통이 계속 이어지기를 누구보다 소망했었지요.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국세청 직원들은 누구보다도 깨끗해야한다. 그래야만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다”고 재임 중에 늘 강조한 후배사랑 당부는 지금도 널리 회자(膾炙)되고 있는 고언이 됐답니다.

 

경인지방국세청 신설 개청은 물론이고 서울국세청 조사2국 신설, 세무전문관제도 도입 등 업적에 못지않게 두 가지 공적이 더 엄청난 치적으로 길이 빛나리라고 믿고 싶네요. 

 

그 중 하나는 당시에 세정 현장에서 암암리에 존재했던 지역차별 인사행정을 바로잡았다는 평가였지요. 탐나는 자리는 특정지역 인물들이 모조리 다 차지하다시피 했으니 적재적소에 인재발탁 인사를 집행한 당신의 넓고 깊은 혜안(慧眼)을 감히 누가 훼방 놓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시대적 환경 탓에 공무원 사회에서도 여성차별화가 당연시되었던 그 당시, 당신은 또 한 번 여성세무공무원들의 심금을 울리는 거보를 내딛었었지요. 김 양, 이 양 등등 여성 직원 하대호칭을 ‘조사관’ 호칭으로 통일, 개선해줘서 큰 감명을 준 인사정책은 후세에 길이 남을 두 번째 족적으로 영원히 살아남아 있지요.

 

아마도 국세청 차장 재임 때일 거예요. 슬럼프에 빠진 나는 잠시잠깐 외도(?)를 한 적이 있었는데, 당신은 잠적한 나를 수소문했다며, 이렇게 말했었지요. “김 기자,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산다’는 말이 있듯이 컴백하셔~!”하고 충고했던 당신의 진심이 통하여 지금도 취재현장에서 이렇게 열심히 뛰고 있답니다.

 

당신이 계셨기에 후배 국세공무원들은 오늘이 있다고 믿는 것 아닌가 싶네요. 국세청 역사상 전무후무한 공적을 세운 당신이기에, 이제 모든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으시고 좋은 곳에서 편안하게 쉬시도록 기원할게요. 고생많이 하셨습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고향인 부산 동래 선영에서 영면하십시오.

2019년 2월

 

 

[프로필] 김 종 규

• 조세금융신문 논설고문 겸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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