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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비록 ㉑]국세청장, 그들의 프롤로그는 창대(昌大)했다?<下>

(조세금융신문=김종규 논설고문 겸 대기자) 국세청은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세정환경에 직면하게 된다. 외환위기극복과정에서 악화된 소득분배구조 개선으로 조세정책이 꾸려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특히 IMF의 이행요구에 따라 경제 등 각 분야의 자율화와 완전 대외개방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고, 금융·기업·공공·노동 등 4개 부문의 구조조정까지 감당해야 했다.

 

이러한 와중에도 국세청은 강도 높은 혁신을 이룩해냈다. 세무조사 체계를 개선해 나갔고 사전통지제도, 세무대리인 참여제도 등을 새롭게 시행했다.


과다부과 행정, 과다증빙요구 등의 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행정과오책임제를 운영해서 납세서비스를 확충하는 한편 부조리를 원천 차단해 나갔다. 권력형 국세청이 아닌 서비스기관으로 거듭나자고 그렇게도 외치다 못해 호소까지 했건만 ‘권력기관 문패’는 아직도 그대로다.

 

‘국세청의 개혁’은 역대 국세청장들이 취임 때마다 담금질한 채찍이 똑같은 공통점이다. 세무환경 변화와 별반 다름없이 국세청장만 바뀌면 행정쇄신을 외치고 나섰다. ‘과거성찰’ 측면에서는 반길 일이지만, 취임 때만 되면 왜 되살아나는지 모르겠다.

 


1998년 4월 국세행정개혁위원회 발족시켜 행정개혁 박차
李 청장, 어느 때보다 세정여건 어렵고 IMF건전재정 압박

1998~1999년 기간은 국세행정의 대대적 개혁이 불가피한 시기였다. IMF 외환위기의 격랑 속에 세입구조가 커다란 변동을 겪어야 하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내국세 세입구조도 크게 변화됐다.


부가가치세 세수가 급감하고 상대적으로 소득세 비중이 높아져 갔다. 직접세 비중이 1997년 51.7%이었던 것이 1998년에는 60.0%로 높아졌다. 1998년 2월에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경제 사회 전반의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기업 구조조정을 비롯한 금융개혁 등 사회 각 분야에서 개혁 작업을 유도하고 나섰다.


그간 세정선진화 작업을 꾸준히 추진해온 국세청은 납세자의 권익을 우선하는 서비스 행정체계의 구축과 TIS 전면 가동으로 선진화된 세정기반을 구축해왔다. 그러나 근원적이고 고질적인 세정상 문제들에 대한 개선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 혼돈의 시기에, 이건춘 국세청장이 11대 청장으로 취임한다. 李 청장은 국세행정의 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1998년 4월 국세행정개혁위원회를 발족시킨다. 고객만족도, 세부담의 형평성, 업무의 생산성, 행정의 투명성 등 이른바 세정개혁과제를 발굴하여 획기적으로 개혁과제를 향상시켜 나갔다. 그 어느 때보다 세정여건이 어려운 시절이었다.


게다가 IMF는 건전재정을 요구하며 압박하고 있었다. 이건춘 청장은 국가재정수입의 원활한 확보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공정과세를 당면과제로 설정했다. 세수확보, 공정과세 구현, 세정개혁 등을 3대 과제로 삼고 건전재정을 위한 세수확보로 경제위기 극복과 맞닥뜨려 나갔다.

 


孫영래 청장, 조사국장 시절 23개 중앙언론사 세무조사 총지휘
재벌2세와 기업사주 세금 없는 부의 세습차단 변칙상속증여에 쐐기

국세행정 조직과 기능의 전면 개편시기가 1999~2001년 즈음이다. 세무분야가 대표적인 비리 분야 중 하나로 각인돼 있던 때다. 제도적인 부조리 근절장치 마련이 시급했다. 그동안 지역담당제에 기반을 둔 세목별 조직은 한 사람의 납세자에 대한 사업자등록, 세금신고, 세무조사, 징수, 불복 등 국세행정의 각 기능을 지역별로 지정된 담당자 한명이 모두 수행함으로써 세법 집행의 효율성 확보 등의 장점도 안고 있었다.

 

그러나 부패에 취약한 구조적 허점을 지니고 있었고, 유착사례도 빈발해서 국세행정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원인제공자가 되고 말았다. 1998년 국민의 정부 출범으로 국세행정의 투명성과 효율성 제고 그리고 납세자 편의증진이라는 과제가 새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채택, 추진되면서 기능별 조직 도입여부는 기정사실화됐다.


첫 호남 출신 청장이 된 안정남 12대 국세청장은 ‘개혁’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생산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대개혁을 단행했다. 대표적인 조직개편 청사진이 1999년에 전국 세무서를 99개로 줄인 기구조직축소다. 정도세정(正道稅政)을 지표로 내세워 곧바로 세정개혁을 단행한 것이다.


2000년 이후의 조세정책은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악화된 소득분배구조 개선이다. 중산층과 서민층에 대한 조세지원은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정책이 이어졌다. 1996년에 도입돼 외환위기를 이유로 1998년부터 유보됐던 금융소득종합과세제도가 2001년부터 다시 시행하게 된다.


2001~2003년 기간을 재도약을 위한 기반마련시기라고 평가한다. 경제의 양적·질적 고도화에 따른 세원관리 업무의 수요증가로 환경변화에 대한 세정상의 대응책 마련이 시급한 시기로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즈음에 공인회계사 자격증까지 취득한 손영래 청장이 13대 국세청장 자리에 앉는다.

 


안 청장 재임 때다. 손 청장이 국세청 조사국장 시절, 2001년 초 23개 중앙언론사 세무조사를 총지휘하게 된다. 공평과세 실현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을 완비해서 변칙적인 상속과 증여에 대한 과세를 더욱 강화했다. 재벌 2세와 기업사주 등의 세금 없는 부의 세습을 적극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바 있는데, 호남 출신 고위공무원으로는 드물게 영남지역에도 두터운 친교를 맺어올 만큼 친화적인 인물이라는 평판이다.


대민봉사 기관이어야 할 국세청이 권력기관으로 인식돼
과세가 공평하지 않다는 지적받아…개혁은 불가피한 선택

14대 국세청장으로 취임한 이용섭 청장은 과거 권력형 국세청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선진국 수준의 납세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세정혁신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세정변화를 폭넓게 수렴하고 공감세정 혁신을 위한 행보다. 2002년부터 구축된 홈택스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최첨단의 전자세정시스템을 완비했다.


세정에 대한 국민의 불신요인이 주로 세무조사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보고, 과거 20년 이상 유지해왔던 특별세무조사제도를 폐지했다. 기업의 접대관행을 선진화하기 위한 접대비실명제 시행은 국세청 이미지를 서비스기관으로 변모시키는데 한몫을 했다. 때문에 사회전반적인 투명성 제고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특히 이 청장은 2003년 4월 국세청장이 1대1 대화를 통해 인사 대상자의 근무희망자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핫라인 전자인사시스템’을 처음 도입, 시행했다. 일종의 인사파일인 셈이다. “대민 봉사기관이어야 할 국세청이 권력기관으로 인식되고 과세가 공평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고 전제한 이 청장은 “강도 높은 개혁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강조한 이유는 국세청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당시 정부의 판단 때문이었다는 뒷얘기다.


2005~2009년 시기는 선진형 납세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납세자권익제고시기로 평가되고 있다. 2005년 3월 취임한 이주성 15대 청장은 국민과 함께하는 열린세정을 혁신방향으로 제시했다. 참여정부의 핵심 정책과제인 부동산투기 억제에 역량을 집중했다. 엄격한 법의 잣대에 따른 과세를 통해 부실과세를 대폭 축소함으로써 공평을 전제로 납득이 가능한 예외 없는 세무조사라는 국세청 본래의 기능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16대 전군표 국세청장은 세무조사 운영방식을 대폭 개선하고 따뜻한 세정추진협의회를 구성· 운영하는 등 국민의견을 세정에 적극 반영해 나갔다. 특히 전 청장은 과거 부조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정치적 중립마저 의심받던 권력기관 이미지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는 평소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특히 성실신고 유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건수위주의 조사운영을 지양해 나가는 ‘따뜻한 세정’ 을 펴나갔다. 17대 한상률 청장은 “아무리 세금을 공평하게 징수하고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해도 그것만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못을 박고, 세무조사 분야의 혁신방안을 강력 추진해 나갔다.


2014년 이후 미래지향적 세정운영 방향 전환…세수결손 지속
국민행복시대 열 재정수요확보 신뢰받는 공정세정에 노심초사

이명박 정부 2기 국세청을 이끌게 된 18대 백용호 국세청장은 기업하기 좋은 세정환경 조성, 고객지향적 서비스 제공 등을 통해 경제 활성화를 적극 뒷받침하기 위해서 심혈을 기울여 나갔다.

 


2009년 1월 韓 청장이 사퇴한 후 6개월 동안 공석이던 국세청장 자리에 오른 백 청장은 당시 국세청 개혁을 진두지휘할 적임자이고 때 묻지 않은 인물로 평가받았다. 백 청장은 과세사각지대의 세원 양성화에 본격 추진하는 등 공평과세 확립에 역점을 두고 세정을 펼쳤다.


2010~2013년 기간이 역외탈세 차단과 현장중심 세정을 펼친 시기였다. 2010년 8월 19대 국세청장에 취임한 이현동 청장은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 지표인 공정사회 구현에 부합하는 ‘법과 원칙이 바로 선 반듯한 국세행정’을 운영목표로 삼았다. 또 ‘성실납세자는 편안하게, 탈세자는 엄정하게’라는 추진전략을 세우고 성실납세자가 존경받는 성숙한 납세풍토를 조성해 나갔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첫 국세청장으로 취임한 20대 김덕중 국세청장은 공정과 신뢰의 가치를 국세행정 운영의 중심으로 내세웠다. 2013~2014년 기간을 지하경제 양성화 추진기반 확보시기로 보고 있다. 즉,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조세정의 확립과 세입예산 확보를 위한 특단의 노력을 전개했고, 국민경제 활성화를 위한 세정지원 확대는 물론 선진 시민으로서의 올바른 납세의식 함양 그리고 깨끗하고 투명한 신뢰받는 국세청으로 변화를 중점추진과제로 내세우고 추진했다.


2014년 8월 임환수 서울청장이 21대 국세청장으로 취임했다. 조사분야에 오랫동안 근무한 정통 조사통인 임 청장은 균공애민(均貢愛民)의 자세로 경제 활성화를 뒷받침, 국민행복 시대를 여는데 필요한 재정수요 확보를 우선으로 삼았다. 국민이 신뢰하는 공정한 세정 완수를 위한 일환책인 셈이다.


2014년 이후 기간은 미래지향적 세정운영 방향 전환 시기였다. 그럼에도 세정측면에서 보면 어려운 경제여건으로 세수 결손 상황이 지속됐고 탈세와 불복의 양상도 더욱 지능화·전문화되고 있었다.

 

임 청장은 자영업자 근로장려세제(EITC) 시행, 자녀장려세제(CTC) 도입 등 복지세제의 확대에 심혈을 기울였다. 또 차세대 국세행정시스템(NTIS) 등 새로운 업무환경에 대응해 신속히 조직과 업무를 안정화시켜 나갔다. 특히 임 청장은 사다리 인사행정을 펴 스텝바이스텝 인사관리 행정을 실무에 접목시켜 나감으로써 공감인사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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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일 칼럼]‘갑질’은 영혼의 홀로코스트
(조세금융신문=김우일 대우M&A 대표) ‘갑질’의 무분별한 횡포로 사회 전반의 여론이 들끓고 있다. 갑질이란 권력 관계에서 우위의 ‘갑’이 권리 관계의 하위에 있는 ‘을’에게 하는 비정상적, 부당, 압박행위를 통칭한다. 대기업의 협력회사에 대한 갑질, 프랜차이즈의 가맹점에 대한 본사의 갑질, 교수가 학생에게 하는 갑질, 군대, 경찰, 기업 등 조직 내에서의 갑질은 사회 전반적으로 광범위하고 잔인하게 자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구조란 게 어쩔 수 없는 수직적 관계의 연결고리라면 갑과 을의 위치가 필연적 존재사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연결고리라 함은 직무상 야기되는 위치의 함수관계이기 때문에 직무를 넘어서는 비정상적, 부당, 압박은 ‘갑을’의 관계를 빙자한 또 다른 범죄임이 틀림없다. 을이 느낀 그 피해 후유증은 정신적 살인행위에 버금가는 만큼 크다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염두에 둬야하겠다. 갑질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른바 출세를 한 소수층이고 갑질을 당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이 소수층의 하위구조에 있는 대다수의 국민에 해당한다. 소수가 눈에 보이지 않는 ‘갑질권력’ 이라는 칼로 대다수의 영혼을 기분대로 입맛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