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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비록 ⑰ ] 영원한 맞수 ‘국세청 사람들’ 下


(조세금융신문=김종규 논설고문 겸 대기자) 심증만 분분했던 촌지봉투 실물 거머쥐고 ‘특종감이다’ 흥분 장 차장과 배 차장, 서로 닮은 꼴보다 라이벌 관계로 더 유명해져


어느 명절 즈음, 본청 출입기자인 나(글쓴이)는 모처럼 일선세무관서 동향을 취재할 기회가 생겼다. 해박한 세법지식을 갖춘 서울국세청 관내 김 아무개 E세무서 과장(사무관)을 취재대상으로 찍었다.


“김 기자, 잘 왔어요. 암행감찰이 떴대.”

눈이 휘둥그레진 김 과장은 캐비닛 문을 열고 두툼한 흰 봉투를 꺼내더니, 나에게 얼른 건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거 가지고 있다가 퇴근 후에 만납시다. 빨리 가 빨리” 금방이라도 들이닥칠 분위기이다. 엉겁결에 휑하니 세무서를 빠져나왔다. 한숨을 돌린 나는 혼자 빙그레 웃고 말았다. 내가 왜 이래? 나름 강심장 소유자인데, 차오르는 숨결 때문에 긴장감을 떨치지 못했다. 난생 처음 당하는 일이기 때문이지 싶다.


드디어 직업의식이 발동했다. 분명 ‘떡값’ 선입견을 떠올리면서, 조심스럽게 봉투 속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자기앞수표가 여러 장이고 고액권(현찰)도 꽤 많았다. 그동안 물증은 없고 심증만 분분했던 촌지봉투 실물이 내 손안에 있으니, ‘특종감’을 거머쥐었다는 생각에 조금은 흥분됐다.


전문지 기자들 사이에서는 ‘숙맥’ 별명으로 불려온 김 과장이 이 정도인데, 베테랑급(?) 수준은 과연 얼마일지 도통 감이 안 잡힌다. 고발할까…. 상황이야 어찌 됐든 나를 믿은 건데 고발이라니, 한참 흔들렸다.


정의로움이 최우선이지만, 때로는 환경에 잘 적응할 줄 아는 기자가 ‘명기자’라는 언론계 선배들의 알토랑 같은 고언이 문득 귓전을 스친다. 마음을 다잡고 냉철한 판단을 내렸다. 이 사안에 한해서만 종범(?)이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


장재식 국세청 차장(3대 · 1973년 5월 1일~1979년 5월 7일 재임)과 배 도 국세청 차장(4대 · 1979년 5월 7일~1980년 8월 12일 재임)은 여러모로 닮은 꼴이라기보다는 국세청 내 라이벌 관계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인물들이다. 장 차장은 서울대 법대와 고등고시 행정과(7회)합격 후 관계에 입문, 국세청 직, 간세국장, 서울국세청장, 국세청 차장을 역임했는데, 타의에 의한 전매청 전 · 출입이 국세청에서 잔뼈가 굵은 호남의 명문가 후손으로는 자존심과 맞물린 케이스가 돼버렸다.



배 차장 퇴진 “1980년경 당시 군부실세 등에 업은 인사청탁한 사람 영향 때문”
장 차장 용퇴 “김 청장 인사권 횡포에 휘말려 권고사직 당한 듯”


관료 재직 중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국제조세과정을 수료했고 중앙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세법과 조세금융 분야를 대학 강단에서 강의할 만큼 학구파로 알려졌다.


14대 때 김대중 대통령의 권유에 따라 민주당 전국구로 정계에 입문, 15대, 16대 서울 서대문 을에서 당선된 민주당 내 대표적인 경제통 3선 의원이기도 하다. 2001년 3월~2002년 1월까지 산업자원부 장관(5대)을 역임한 시기도 김대중 정부 때다.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와는 비록 정치노선은 달랐지만, 호형호제할 정도로 인간적인 유대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측근들의 전언이다. 1979년 5월 장 차장은 국세청 차장 6년 재임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접고, 주택은행장으로 자리를 옮겨 인생 제2막을 열어나간다.


“1980년 8월경 당시 군부실세를 등에 업고 소위 인사 청탁을 한 사람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 간다”는 배 차장은 국책금융기관인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겨줄 것을 김 청장으로 부터 권유받게 된다. 말이 좋아 권유이지 떠 밀려나가는 입장이 됐고 쫓겨나는 모양새가 돼 버렸다.


배 차장은 소위 KS 즉, 경기고 서울대(법대) 출신이다. 1963년 3급 고등전형시험에 합격 임관됐고 청와대 행정관에서 용산세무서장으로 발탁 · 기용될 만큼 장래가 촉망되는 엘리트이다.


이낙선 초대 국세청장, 서영철 국세청 조사국장, 배 도 국세청 총무과장을 ‘청와대 출신 3인방’이라고 불려 왔으니, 권세가 막강 그 자체였다. 국세청을 쥐락펴락할 만큼 국세청의 3인방의 실권은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였다는 게 전직 OB들의 공통적인 후일담이다.


대전, 대구, 중부국세청장을 역임한 배 차장은 세정감독관, 기획관리관을 역임하던 중 1974년 재무부 세정차관보로 영전했고 고재일 청장이 건설부 장관으로 옮기는 바람에 장 차장이 떠 밀려났는데, 그 후임 차장으로 다시 국세청 차장자리로 입성한다.


특히 배 차장은 ‘KS출신과 고시출신만 좋아하고 너무 귀골스럽게 처신한다’는 투서를 받기도 했는데, 마치 용호상박 같은 인사게임이 영 · 호남지역 안배하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더니만, 끝내는 김 청장 인사권 횡포에 휘말려 권고사직까지 당하는 모습이 두 사람은 너무나 흡사한 데가 많았다. 영락없는 오월동주(吳越同舟)다.


이낙선 초대청장, 서영철 조사국장, 배 도 총무과장
‘청와대 출신 3인방’ 실권 막강 국세청을 쥐락펴락


투서 한 장으로 자기를 보조하는 차장을 밀어내치듯 저버리는 김 청장의 인사행정관을 본보기로 삼기에는 ‘국세청 사람들’ 토양에는 자양분 절대결핍증후군으로 불거진다. 조금은 씁쓸한 여운이 감돈다고나 할까. 감성의 차이겠지만, 초대 이낙선 청장은 직원들의 세무비리에 대해서 대통령과 독대, 청장 자리를 내걸고 책임지겠다고 맹세할 만큼 한 조직의 수장으로서 단위조직을 위한 대표성을 발휘한 적이 있어 퍽 대조적인 지도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두 기둥 세우기가 당시의 인사관리의 큰 원칙이었다. 하나는 고시 출신의 젊고 참신한 인재들을 주축으로 세워진 기둥이고, 또 다른 하나는 비고시 출신이지만 노련한 실무경험을 쌓은 유능한 인재 중심의 기둥이다” 국세청을 짊어지고 나갈 역군들이 될 인력을 고시 출신과 비고시 출신들의 참신함과 실무경륜을 높이 평가한 배 차장의 해학(諧謔:humor)이 국세행정 집행에 나침반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들 두 기둥이 되는 인력들이 국세청에 건재하게 자리해야 한다는 게 배 차장의 평소 소신이었다는 전언이다. 내부적으로는 선의의 경쟁과 갈등 그리고 라이벌 의식을 공유하면서 국세청을 이끌어 가고 있는 핵심인물로 보는 관점이 두 국세청 차장의 공통된 지향점인 것 같다.


장 차장과 배 차장 닮은 제2의 인물이 많이 배출되면 될수록 국세청은 그만큼 더 성숙해지고 더불어 납세자로부터 신뢰받는 선진형 국세청이 앞당겨지리라 확신한다.


참신한 고시출신 인재 기둥과 실무경험 쌓은 비고시 출신
인재 중심 기둥세우기 위한 국세청 인사관리 대원칙 세워


세금이라는 속성 때문에, 그런 속성을 품고 일하고 있는 국세공무원들은 자기들 직업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면서 살았다. 학생생활기록부 학부모 직업란에 ‘직업’을 기재할 때 주저주저했던 그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도 바보스럽기만 했던지, 스스로 부끄럽기만 하다는 어느 전직 OB의 말이 무겁게만 들린다.


그때 그 시절, 세무관서에서도 보직 명칭을 은어(隱語)로 사용했던 때가 있었다. 세무서장은 사장님, 과장은 전무님, 계장은 상무님 등으로 불렀는데, 사석에서는 세무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꺼려했던 시대였다. 그만큼 자신에게는 엄격해야 했고, 인색하리만치 공(功)보다는 과(過)를 벗어버리려는 몸부림이 강하게 표출됐던 시기가 아니었나 되짚어 보게 된다.


한나라당 시절, 임채주 국세청장 재임기간 때다. 이석희 차장의 차떼기 정치자금 연루 등 비리부정 사건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이 크다. 어디 이뿐이랴. 인사비리와 얽힌 그림로비 사건, 모모청장에게 보낸 사주단자(四柱單 子) 인사로비 등 노른자위 자리 빼앗기 암투가 틈틈이 물밑에서 꿈틀거려 왔다.


특히 세무공무원의 인사가 공무원 각자의 실력보다는 외부압력이나 혈연, 지연, 학연 등에 의해서 판세가 뒤죽박죽, 끼리끼리 인사비리로 점철된 인사풍토는 어제 오늘의 얘기만은 아니다.


이낙선 초대 국세청장은 당시 장재식 과장을 요직국장으로 발탁하게 된다. 재무부 장관 결재까지 받았다. 그러나 권력의 자리다툼인 힘의 균형에 밀려 그 자리에 다른 인물이 앉게 됐다. 훨씬 뒤에 밝혀진 얘기다.


당시 공화당 모모 중진인사가 벌린 끈질긴 ‘인사 청탁’때문에 무산된 것이라는 뒷담화가 개운하지가 않다. 실력보다 힘 위주의 인사풍토를 서식케 했던 그 시대의 우울했던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


비록 청장 보조역인 제2인자 자리에서 머물다보니 국세청장 자리에는 앉지는 못했지만, 배 차장은 국세청 차장과 재무부 세정차관보라는 세정분야 공무원이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를 모두 다 섭렵한 유일무이한 기록보유자가 됐다.


“국세청장도 정치적인 선택만으로 임명하지 말고 전문적 지식과 덕망을 갖춘 공평무사한 인재를 기용 · 발탁해야 한다”고 주창한 장 차장의 세무공직생활 ‘마침 소회’가 심금을 울린다. ‘국세청 사랑’이 듬뿍 차고 넘치는 절규처럼 메아리쳐와 더욱 짠하다.


24명 차장 가운데 7명은 국세청장으로 내부승진… 영광 차지
추경석 임채주 안정남 이주성 전군표 한상률 이현동차장 기용


청장을 보조하고 부득이한 사유로 청장이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그 직무를 대행하는 직위가 차장이다. 24명의 역대 차장 중 7명이 국세청장으로 내부승진, 영광의 자리에 앉았다.


추경석, 임채주, 안정남, 이주성, 전군표, 한상률, 이현동 등 7명이 장본인들이다.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일반직 공무원인 역대 국세청 차장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역대 차장명, 재임기간, 주요 보직순이다)


• 제3공화국 초대 차장 김재덕 _ 1966년 2월 28일~1970년 1월 29일, 재무부 세관국장 · 국세청 차장

• 2대 배 숙 _ 1970년 1월 29일~1973년 5월 1일, 광주 · 대전 · 중부 · 서울국세청장 국세청 직세국장 · 국세청 차장 · 재무부 사세국장

• 제4공화국 3대 장재식 _ 1973년 5월 1일~1979년 5월 7일, 서울국세청장 · 국세청 직세국장 · 간세국장 · 국세청 차장 · 산업자원부장관 · 14, 15, 16대 국회의원 · 한국주택은행장

• 4대 배 도 _ 1979년 5월 1일~1980년 8월 12일, 대전 · 대구 · 중부국세청장 · 재무부 세정차관보 · 국세청 차장 ·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 효성그룹 회장

• 5대 권영노 _ 1980년 8월 14일~1982년 12월 17일, 서울국세청장 · 국세청 조사국장 · 국세청 차장 · 세무대학장

 • 제5공화국 6대 지창수 _ 1982년 12월 17일~1987년 8월 3일, 서울국세청장 · 재무부 직세국장 · 기획 실장 · 국세청 차장 · 세우회 이사장

• 7대 추경석 _ 1987년 8월 3일~1991년 12월 20일, 서울국세청장 · 국세청 조사국장 · 국세청 차장 · 국세청장 · 건설교통부장관 · 국세동우회회장

• 노태우 정부 8대 임채주 _ 1991년 12월 28일~1995년 12월 20일, 국세청 직세국장 · 조사국장 · 국세 청차장 · 국세청장

• 김영삼 정부 9대 박경상 _ 1996년 1월 3일~1996년 7월 31일, 중부 · 서울국세청장 · 국세청 직세국장
· 조사국장 · 국세청 차장

• 10대 이석희 _ 1996년 8월 8일~1998년 3월 15일, 국세청 직세국장 · 국세청 차장

• 김대중 정부 11대 안정남 _ 1998년 3월 15일~1999년 6월 13일, 광주국세청장 · 국세청 간세국장 · 직세국장 · 기획관리관 · 국세청장 · 건설교통부장관

• 12대 황수웅 _ 1999년 6월 13일~2000년 8월 20일, 대구국세청장 · 국세청 차장

• 13대 곽진업 _ 2000년 8월 21일~2003년 4월 3일, 부산국세청장 · 국세청 직세국장 · 법인납세국장 · 국세청 차장

• 노무현 정부 14대 이주성 _ 2003년 4월 7일~2005년 3월 14일, 부산국세청장 · 국세청 기획관리관 · 국세청 차장 · 국세청장

• 15대 전군표 _ 2005년 3월 28일~2006년 7월 17일, 국세청 조사국장 · 국세청 차장 · 국세청장

• 16대 한상률 _ 2006년 7월 31일~2007년 11월 29일, 서울국세청장 · 국세청 조사국장 · 국세청 차장 · 국세청장

• 이명박 정부 17대 정병춘 _ 2008년 4월 30일~2008년 12월 30일, 광주국세청장 · 국세청 법인납세 국장 · 국세청 차장

• 18대 허병익 _ 2009년 1월 2일~2009년 7월 22일, 부산국세청장 · 국세청 납세지원국장 · 법인납세 국장 · 조사국장 · 국세청 차장

• 19대 이현동 _ 2009년 7월 23일~2010년 8월 29일, 서울국세청장 · 국세청 조사국장 · 국세청 차장 · 국세청장

• 20대 김문수 _ 2010년 11월 30일~2012년 6월 29일, 국세청 소득지원국장 · 국세청 차장

• 21대 박윤준 _ 2012년 7월 2일~2013년 4월 10일, 국세청장 비서관 · 국제조세관리관 · 국세청 차장

• 박근혜 정부 때 22대 이전환 _ 2012년 4월 12일~2014년 6월 29일 부산국세청장 · 국세청 법인납세 국장 · 국세청 차장

• 23대 김봉래 _ 2014년 8월 28일~2017년 7월 3일, 서울청 세원분석국장 · 조사1국장 · 국세청 차장

• 문재인 정부 24대(현) 서대원 _ 2017년 7월 3일~현재, 국세청 기획관리관 · 법인납세국장 · 국세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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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금산분리 규제, 언제까지 고수할 건가?
(조세금융신문=조남희 금융소비자원 원장) 은행의 문턱이 높다는 것은 일반적 인식이 아닐까 싶다. 수수료면 수수료, 금리면 금리 등의 적용과정에서 은행이 기업 이미지보다 기관의 이미지가 강한 느낌도 작용했다고 본다. 하지만 최근 이런 분위기를 깨는 사건이 생겼다. 바로 인터넷은행의 등장이다. 이른바 ‘메기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시장에 강력한 영향을 주고 있다. 인터넷은행이 가입자수 뿐 아니라, 금리인하 등 다양한 경쟁력을 선보이자, 기존 은행들도 앞다퉈 금리를 내리고 있다. 물론, 주택담보대출 등의 금리는 여전히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신용대출 금리를 이렇게 내리는 것을 보면, 그 동안 은행들의 금리적용이 합리적이지 않았다는 이유를 갖게 한다. 일단 케뱅(케이뱅크), 카뱅 (카카오뱅크)으로 불리는 인터넷은행의 성공적인 효과에 추가로 또 다른 인터넷 뱅크의 등장에 관심이 높다. 점포 없이 인터넷과 ATM, 콜센터 등으로 기존은행에서 하는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을 인터넷전문은행이라 한다. 쉽게 말해, 인터넷으로 운영되는 새로운 형태의 은행이라고 할수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 4월 3일 K뱅크에 이어 카카오뱅크가 정식 영업을 시작함으로써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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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금융신문=이지한 기자)“대자산가들은 수익률이 높은 임대부동산이나 매년 공시지가가 상승하는 토지부터 생전에 미리 증여하여 상속세를 절세합니다.” 6년차 신참 세무사인 우덕세무법인 고경희 대표세무사의 상속·증여세 강의는 언제나 수강생이 차고 넘친다. 24년간의 국세청 실무경험과 여러 저서 등을 통해 이미 이 분야 전문가로 알려진 그의 독보적 전문성 때문이다. “87년도에 국세청에 들어가서 2012년 2월까지 있었으니까 24년 4개월가량을 세무공무원으로 일했습니다. 대구지방국세청과 마포·삼성·역삼세무서 등에서 근무했죠. 2002년에 세무사 시험에 합격한 뒤 개업도 고려했는데 국세종합상담센터 서면팀 상속세및증여세반으로 배속되면서 개업은 미뤄지게 됐습니다.” 국세청은 순환보직제이기 때문에 한 곳에 2년 이상 머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2009년에 역삼세무서 재산세과로 발령 받기까지 7년을 국세상담센터(이후 국세청 고객만족센터로 변경)에서 상속세와 증여세 관련 상담을 했어요. 인터넷과 서면상담이 주된 업무였는데 한 분야를 오래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문가가 된 거죠.” 고 세무사는 당시 상속세와 증여세 분야의 서면질의에 대해 서면으로 답변하는 업무 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