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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금융허브, 식민지 시대의 금융시스템을 타산지석으로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영국과 프랑스는 제국주의 시절에 식민지를 관리하기 위하여 다양한 교육기관과 금융기관을 설립하였다. 교육기관은 식민지의 정치와 사회를 담당할 엘리트 관리자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의 고등교육을 실시하였다.

 

영국에서 19세기에 신설된 대학은 대부분 산업화와 식민지 관리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였다. 또한 일부 대학은 특정 지역에 필요한 지역학이나 개발학 등에 특성화하였다.

 

또한 금융기관은 식민지의 경제개발과 재정에 필요한 자금조달을 책임졌다. 이 때의 금융기관 형태는 본국을 중심으로 해외 영업을 실시한 로이드은행과 바클레이즈은행 등이 있었고, 본국보다 먼저 해외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홍콩상하이은행(HSBC), 스탠다드은행, 차터드은행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열강의 모델은 우리 나라의 근대화 과정에서도 채택되었고, 국내 정치와 경제를 단시간 내에 높은 수준으로 이끌었다.

 

지역 연구를 교육기관, 런던대학교 동양과 아프리카 연구대학(SOAS)

영국은 산업혁명 이후 급격히 경제가 성장하면서 생산된 제품의 수요처를 해외에서 찾았다. 이 때 수많은 대학들이 실용 학문에 대한 수요와 지역 관리자를 양성하기 위하여 세워졌다. 그 당시에 유행하던 붉은 벽돌이 학교 건축에 사용되면서 이 때 설립된 대학을 레드브릭 대학(Red Brick Universities)이라고 한다. 물론 11~13세기에 형성된 중세 대학(Ancient Universities)인 옥스퍼드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은 이들 대학의 설립을 반기지 않았다. 이들 두 대학의 카르텔은 거의 1000년을 이어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식민지에 대한 전공과 연구 분야와 기술을 가르치는 특성화된 대학들도 만들어졌다. 각 대학이 배출한 인재와 연구성과는 식민지 개발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SOAS(The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는 1916년 동양연구학교(School of Oriental Studies)로 설립하였다. 이 학교는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지역의 정치, 경제, 개발, 인권, 빈곤, 종교, 사회문제 등을 연구하고 있다. 각 지역의 경제나 사회에 대한 개발학(Development Studies)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과거 영국 식민지였던 국가들의 엘리트 관료들은 대부분 영국 유학출신들이다. 싱가포르의 수상이었던 리콴유와 홍콩의 초대 행정장관이었던 둥치화는 모두 영국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다른 영연방 국가에서도 상당수 영국의 고등교육을 받은 관료들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다. 이러한 식민지 관리에 경험이 없는 미국도 영국 모델을 따라서 제3세계 국가의 우호적 인재를 배출하기 위하여 다양한 혜택으로 유인하였다.

 

 

규모의 경제를 창출할 글로벌 은행의 성장

식민지 개발에 필요한 자금조달은 기존 영국의 금융기관이나 해당 지역에 신설된 특성화된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이루어 졌다. 그 중에서 프랑스의 소시에떼 제너랄은행은 1864년에 설립하여 1870년에 파리에 15개 지점과 프랑스 전역에 32개 지점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1871년에 푸랑크프르트 조약에 따라서 프랑스의 전쟁 배상을 위한 국채발행 기관이 되었다. 19세기말 남동 유럽에 진출하여 이 지역 국가들의 국채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에 가장 큰 영향을 발휘하였다. 1920년대 프랑스의 대표은행으로 계속 성장하였다. 그리고 1930년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프랑스와 그 식민지에 공공대출을 시작하면서 미국과 북아프리카에 대한 진출을 확대하였다. 1945년 은행의 국유화와 식민지들의 독립으로 은행도 신생 독립국가의 법을 따라서 그 시스템을 바꿨다.

 

이와 같이 국가의 필요에 의하여 만들어진 금융기관은 정치변화에 취약할 수 있다. 반면에 고액 개인자산관리에 집중한 프라이빗뱅킹(private banking)은 정치적인 중립 상태에서 상당수 200년이상 운영되고 있다. 1990년대말 IMF구제금융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금융기관이 소멸되거나 다른 회사에 합병되었는데 시장원리를 따르지 않은 정치적인 이해관계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특성화된 은행도 지역적인 분산으로 위험을 관리하기 때문에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왔다.

 

지역관리를 위한 역내은행의 특성화

영국의 식민지 개발에 특화된 스탠다드은행(Standard Bank of South Africa)과 차터드은행 (Chartered Bank of India, Australia and China)은 식민지시대의 소산으로 비슷한 구조와 경로를 걸으면서 발전하였다. 두 은행은 연관된 지역에서 축적한 고유한 지식과 경험, 현지 정부와 기업의 유대 관계 등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같은 지역에서 영국계인 Oriental Bank Corporation, Hong Kong & Shanghai Bank, 그리고 Mercantile Bank of India, London and China 등과 경쟁하였다.

 

스탠다드은행은 1862년에 사우스 아프리카에 설립되었다. 1863년 Port Elizabeth에서 영업을 시작하여 다이아몬드 광산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1867년 킴벌리지점을 개설하였다. 또한 금광의 발견으로 1886년에 윗트워터스랜드지점, 1901년에 요하네스버그 지점을 열었다. 주로 스탠다드은행은 프랑스의 지배하에 있던 북아프리카를 제외한 영국령의 중앙아프리카, 동부아프리카, 남부아프리카 지역의 자원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였다.

 

한편, 초기부터 아시아 지역에 특화된 차터드은행은 1853년 영국 런던에 설립하여 1858에 인디아 캘커타, 붐바이, 그리고 중국 상하이에 개점하였다. 그 후 은행은 1859년 홍콩과 싱가포르, 1863년 카라치로 지점을 확장하였다. 초기에는 아편과 면화 거래에서 발행된 어음 할인이 주로 이루어 졌다. 그리고 1869년 수에즈운하의 건설과 면방직 공업의 활성화로 유럽과 극동 아시아의 금융거래에서 막대한 이득을 얻었다. 중국의 아편 수입이 증가하면서 이익도 더욱 증가하였고 상하이와 홍콩에서 은행권 발행을 허가 받았다. 현재도 스탠다드 차터드은행은 홍콩에서 중국은행, 홍콩상하이은행과 함께 은행권을 발행하고 있다.

 

그렇지만 스탠다드은행과 차터드은행은 식민지 국가들의 독립과 국유화 등의 환경변화, 국제화에 따른 규모의 경제의 필요성으로 1969년에 스탠다드 차터드은행으로 합병하였다. 합병 은행도 유로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여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의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있다. 영업지역이 주로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제3세계에 위치하기 때문에 항상 많은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지역은 가장 수익성이 높은 지역이기 때문에 지역특성화 전략과 시장을 확장하는 글로벌 전략으로 위험을 분산시키고 있다.

 

 

우리나라도 내부경제 중심에서 글로벌 중심으로 이행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그 중심인상품의 교역과 자본의 이동은 이를 실행하는 인재양성과 금융 인프라의 구축을 기초로 이루어질 수 있다. 식민지 시대의 소산이지만 영국이나 프랑스가 지역관리와 경제개발에 필요한 인재양성, 금융기관을 운영한 시스템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금융허브전략은 이러한 내부화된 시스템과 자원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실질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현재 경제 발전과 규모는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글로벌 수준에 미달하는 운영시스템, 글로벌전략이나 현지 특성화를 실행할 인재 양성, 그리고 경쟁력 있는 금융기관을 육성하지 못하였다. 대부분의 해외진출도 해외의 국내기업이나 해외 교민을 대상으로 소극적인 특면에서 이루어졌다. 스탠다드 차터드 은행의 사례와 같이 우리 금융기관도 투자지역에 적극적으로 현지화한 후 전세계에서 자금을 조달하여 해당 지역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야 한다. 지금의 글로벌 시대는 힘의 논리가 아니라 기술과 정보에 의한 경쟁력 확보에 집중해야 한다.

 

[프로필] 구 기 동
• 현) 신구대학교 글로벌경영학과 교수

• 덕수상고, 경희대 경영학학사 및 석사, 고려대 통계학석사
Liverpool대 MBA, 서강대 경영학박사

• 동부증권 자산관리본부장, ING자산운용 이사

• (주)선우 결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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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일의 세상 돋보기]아편전쟁이 미중무역전쟁에 주는 시사점
(조세금융신문=김우일 대우M&A 대표) 세계 경제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요새 서로를 비난하며 보복관세 및 규제강화를 선포하는 등 무역전쟁의 양상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이 전쟁은 대중무역수지에서 엄청난 적자를 면치 못하는 미국에 의해 자국산업보호를 이유로 먼저 시작되었다. 중국은 미국의 최대무역상대국이면서 무역적자유발국으로 미국 전체적자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도 이에 질세라 한치의 양보도 없이 보복에 나설 태세다. 이는 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국가까지도 그 파급 효과가 미칠 수밖에 없다. 세계경제대국이 기침하면 중위 국가는 감기를 앓고 하위 국가는 독감을 앓는다는 글로벌 경제논리를 그대로 입증하게 될 것임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단기적으로는 양대 국가 상호간에 벌어지는 무역감소가 우리나라와 같은 제3국에는 대체효과에 따른 수출증가가 어느 정도 이루어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보호무역에 따른 전반적인 세계무역 감축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 뻔하다. 이를 반영하듯 금융, 주식, 환율 등 세계경제지표들이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세계경기침체의 서막을 보는 듯하다. 필자는 갑자기 미국에 의해 야기된 무역전쟁을 보면서 1840년에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