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혁신의 기치를 내걸고 제일 먼저 칼질하고자 겨냥하는 곳이 아마 검찰인 것 같다. 국가 최고 권력기관이라 하면 검찰, 국세청, 국정원, 공정거래위원회, 경찰 등을 열거할 수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최강의 권력기관은 검찰 이라 할 수 있다. 국세청은 세금사항, 국정원은 이른바 정보 사항, 공정거래위원회는 경제사항, 경찰은 생활사항 등을 수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지만 결국 징벌을 가하는 최종의 수사권과 기소권은 검찰만이 가지는 기소독점주의와 기소편의 주의이기 때문이다. 검사만이 공소제기를 할 수 있고, 공소의 제기에 관해 검사의 재량을 허락하고 불기소를 내릴 수 있는 권한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객관적 및 통일적 기준에 따른 공소권집행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지만 정치권의 외부압력에 불복하거나 자기 입맛대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단점을 더크게 가지고 있는 듯하다. 과거 일본의 잔재를 따라 그대로 물려받아 온 검찰제도는 수사권, 기소권을 통틀어 독점하고 있는 세계 어디에도 볼 수 없는 집단이다. 이로 인해 역대 많은 정부가 이를 개혁하고자 했지만 공고화된 내부반발에 의해 수포로 돌아갔고 심지어는 역대 정권들이 거꾸로 이 권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후보시절 향후 지난 정부의 적폐척결을 위해 고위공직자 임명 시에는 다음과 같은 5대 비리를 범한 사람에게는 공직을 배제하겠다는 원칙을 천명하여 국민들로부터 신선한 기대를 받았다. 5대 비리란 ①병역면탈 ②부동산투기 ③세금탈루 ④위장전입 ⑤논문표절 등을 말한다. 나열된 5대 비리에 대해 그 성격을 규명해보기로 한다. 첫째, 중요한 범죄라기보다는 직접적 피해자가 없는 일종의 도덕적 기준의 범죄라는 인상이 짙다. 둘째, 불가피하게 중대한 과실로 발생됐기보다는 전적으로 본인의 이득관계를 위한 자발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셋째, 인간이면 누구나 강한 죄의식 없이 저지를 수 있고 또 관용을 베풀 수 있는 사건의 종류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문재인 정부에서 처음으로 고위 공직자 임명에서 나온 각 후보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컸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면면을 보면 5대 비리의 그물망에 안 걸리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연유로 지금 새로운 국민들의 희망과 지지를 안고 출발한 문 정부의 동력이 주춤거리고 있다. 야당에서는 문정부의 인사원칙이 붕괴됐다는 비난이, 여당에서는 사전에 공직 기준을 너무 높여 삼는 바람에 부담이지만 국정 운영의 능력과는 전혀
‘비서실’ 이름만 들어도 그 위상과 권위를 짐작케 한다. 어느 조직을 막론하고 수장이 있게 마련이고 수장이 있으면 그 수장을 보좌하고 지원하는 비서실이라는 별도의 조직이 따라붙게 되어있다. 국가의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에게도 비서실, 국회의원에게도 비서실, 장관에게도 비서실, 재벌총수에게도 비서실이라는 이름의 조직이 있다. 이 비서실의 기능은 수장을 대신해서 그 업무를 상세히 파악하고 수장이 의사결정을 보다 더 합리적으로 내릴 수 있도록 자료를 수집, 분석, 대안을 지원하는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비서실이라는 조직의 기능이 비정상적으로 움직여 본래의 목적을 벗어나는 경우가 허다함은 옛날 왕조시대나 근대국가에서도 빈번하게 보여 진다. 다시 말해 수장의 사적이익을 위한 권력 오남용에 수장의 손발이 되어 친위대 역할을 하게 되는 경우다. 비서실이 수장의 장막 뒤에서 추는 칼춤은 그 위력이 대단하다. 수장의 눈앞에서 장막을 치고 거짓을 보고하여 수장을 그릇되는 방향으로 오도함은 악폐 중의 으뜸이다. 수장의 지시나 수행하는 단순한 손발이 되는 비서실은 무위도식하는 한심한 작태이다. 이러한 악폐, 작태로 인한 그 폐해가 그 조직에 미치는 악영향
일제식민시대로부터 1945년 해방 이후 우리 대한민국에는 대통령중심제 헌법을 유지하며 많은 대통령을 배출했다. 출신별로는 독립운동가, 학자, 군인, 정치투쟁가, 변호사, 기업인 등으로 구성되어있고, 성별로는 여성 1명을 포함해 남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쟁취수단별로 봐도 직접선거, 간접선거, 쿠데타, 대행임명 등으로 다양하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그랬던가. 최고 권력의 마지막 종말을 눈여겨 볼 것 같으면 천태만상이다. 머리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열거해놓은 듯 종말백화점이 화려하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4 · 19혁명으로 하와이로 망명했고, 뒤이은 윤보선 대통령은 5 · 16군사 쿠데타에 의해 실각했고, 총칼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최측근인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살해당하였고, 뒤이은 전두환대통령, 노태우 대통령은 퇴임 후 비리로 구속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후 김영삼, 김대중대통령은 퇴임 후 갑작스러운 폐렴이라는 질병에 유명을 달리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자살을 택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과 자원외교사업의 후유증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농단사건으로 탄핵파면되고 구속을 피하지 못했
2017년 3월 10일 11시 미래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를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온 국민의 관심 속에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다. 판결 전에는 보수, 진보라는 재판관들의 성향을 문제 삼으며 과연 몇 대 몇으로 인용을 할지 혹은 기각을 할지가 큰 화젯거리였다. 그러나 탄핵인용이 되면서 만장일치라는 보기 드문 판결 결과는 무엇인가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함의가 느껴진다. 본래 전제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만장일치라는 판결은 다양성과 자유민주주의를 대표하는 현대국가사회에서 좀처럼 나타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수의견과 사상이 현재화될수록 다수의견과 사상이 더 돋보이고 더 큰 가치로 진화할 수 있는 밑거름이기에 어떤 판결이든 소수의견과 사상이 주목받고 있는 현실에 이번 헌재의 8 대 0 이라는 만장일치라는 판결은 의외였다. 고금 이래로 유대계 민족사회에서는 만장일치의 판결을 금기시해와 어떤 판결이든 소수의견이 나오지 않는 판결을 인용치 않았다. 계속 평의하고 토론해 소수의견의 싹이 틀 때까지 끊임없이 재판을 이어나갔다 한다. 그만큼 소수의견은 다양성의 차원에서 사상의 진화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도 이번 헌재의 만장일치 판결에 필자(김우일 전 대우그
<본 칼럼은 박 대통령의 탄핵인용 결정이 내려지기 이전에 씌여졌음을 알려드립니다. /편집자 주> 헌재의 탄핵심판과 더불어 가장 주목할 만한 맹공의 칼날을 휘두르는 특검이 국민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별법에 의해 생성된 시한부생명의 특검이 무소불위의 대통령 권력에 맞서 진실을 파헤치고자 좌고우면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벌써 관련된 고위권력층의 대부분을 구속하는 등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을 다소나마 시원하게 해주고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 최태민, 최순실과 관련된 50여년 전의 의혹도 살펴보는 등 전방위 수사에 청와대 안에 웅크리고 있는 대통령과 그를 경호하는 비서실, 경호실 조직에 맞서 30여명의 수사관들이 십여 대의 승용차를 타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5시간 동안 청와대 문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특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총이 아니라 정당한 법률절차에 의해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이었다. 이를 바라보는 필자(김우일 전 대우그룹구조조정본부장)는 특검에 한비자의 후예라는 별칭을 붙여주고 싶다. 한비자는 누구인가. 기원전 250여년 전 중국전국시대 한나라 사람으로 순자에게서 배운 법가학파를 대
한 국가의 최고 권력자로 장기간 군림해오며 국가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 중, 그의 딸들이 전적으로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고 또 다시 최고 권력자로 등장한 인물을 꼽으라면 인도의 네루의 딸인 인디라 간디와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를 들 수가 있겠다. 인디라 간디는 인도의 건국아버지인 자와할랄 네루총리의 딸로 아버지와 함께 영국으로부터 독립운동에 나섰고 독립 후 초대 총리로 당선되며 정치의 길을 걸었다. 네루는 17년간 재임하며 민주주의 정착에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인도경제를 빈곤으로부터 구출해 내는 데는 실패했고 이른바 배고픈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네루에 대한 인도 국민들의 지지는 변하지 않았다. 비록 경제성장의 발판은 마련하지 못했지만 민주주의 토대를 이룩했다는 인식은 국민들의 네루에 대한 향수를 더 갖게 했다. 이 향수가 딸 인디라 간디가 총리에 오르는데 큰 발판이 되었고 전적으로 아버지인 네루의 후광으로 최고 권력자에 올랐던 것이다. 박정희 전대통령의 딸인 박근혜는 영부인인 육영수의 사망 후 실질적인 영부인 역할을 하며 아버지를 내조했다. 20여 년간을 최고통치자로 군림한 박정희는 우리나라의 경제빈곤을 타파하기 위해 재벌위주와 민
우리나라 역사에 내려오는 최고 권력자의 궁궐 내 벌어지는 암투, 권모술수의 피비린내 나는 잔혹사를 살펴보면 필자의 견지로 다음 네가지 사건으로 구분하여 음미해봄이 나름대로 큰 교훈을 얻을 것 같다. 첫 번째 사건은 서기 670여년도에 일어난 고구려의 권력다툼이다. 연개소문은 당시 왕이던 영류왕을 죽이고 최고 권력자로 국정을 마음대로 휘두르다 666년 사망하자 그의 아들 남생, 남건, 남산 간에 권력다툼이 발생, 장남인 남생이 권력을 승계하지만 동생에 의해 쫓겨나 중국 당에 항복, 결국 우리나라의 북방영토국인 고구려가 중국 당나라에 의해 멸망하는 계기가 된다. 두 번째 사건은 서기 1398년 조선초기 태조 이성계가 계비 신덕왕후 강씨사이에 낳은 막내아들 방석을 태자로 삼은 것에 반발해 개국공신이었던 신의왕후의 아들 이방원이 무력으로 태자 방석을 죽이고 태조이성계를 함흥으로 쫓아낸 사건이다. 세 번째 사건은 서기 1453년 조선의 5대 왕인 문종의 아들 단종이 13세 어린나이로 즉위하자 문종의 유명을 받은 황보인, 김종서 등 고명대신들이 권력을 잡고 있었다. 이에 정치적 야심이 큰 문종의 동생인 수양대군이 거사를 일으켜 권력을 쥔 고명대신들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