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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규·판례]과점주주된 출자자 2차 납세의무자 지정 정당

심판원, 제시한 증거자료는 정황적 자료에 불과하고 객관적 증빙으로 보기 어려워

(조세금융신문=김종규 기자) 법인의 발행주식 전부를 개업 때부터 직권폐업 때까지 보유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대표이사로 등재되어 있었고 법인으로부터 매월 일정금액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이를 근로소득으로 신고했으므로 과점주주로 보아 제2차 납세의무자 지정과 관련한 납부통지를 한 과세청의 처분은 잘 못이 없다는 심판결정이 최근 내려졌다.

 

처분청은 청구인에게 제2차 납세의무자로 지정하고 납부 통지했다. 청구인은 이에 불복, 2016.11.18.일 심판청구를 제기했다.

 

청구인은 000와 아무런 관련이 없이 명목상으로만 주주로 등재되어 있을 뿐이므로 청구인에 대한 제2차 납세의무자 지정통지는 위법하다는 주장이다.

 

처분청에 의하면 청구인은 은행통장만 개설해 주었다고 주장하나, 본인의 동의 없이 불가능한 법인설립등기 및 사업자등록 신청 등이 되어 있어 청구인의 주장은 신빙성이 없고 오히려 청구인은 000로부터 2012~2015년까지 근로소득 지급명세서 상 급여를 지급받은 사실이 확인된다는 의견을 냈다.

 

한편 조세심판원은 청구인은 000의 발행주식 전부를 개업 시부터 직권폐업 시 까지보유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대표이사로 등재되어 있었으며 매월 일정금액을 받았고 이를 근로소득으로 신고했고, 청구인이 제시하는 증거서류 등은 정황적 자료에 불과하며 청구인을 명목상 주주라고 볼 수 있는 객관적인 증빙으로 보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처분청이 청구인을 000의 과점주주로 보아 출자자에 대한 제2차 납세의무자 지정 납부통지를 한 처분은 잘 못이 없는 것으로 판시, 기각결정(조심20170036, 2017.3.8.)했다.

 

다음은 처분청이 제출한 심리자료 등에 나타난 사실이다.

청구인은 000의 총 발행주식 10,000주 전부를 계속하여 보유했고, 동 법인의 발기인이자 대표이사로 등재되었다.

국세청 전산망(NTIS)에는 2012~2015년 기간에 청구인의 총 사업내역과 000의 근로소득 이외의 근로·사업소득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청구인이 제시한 증거서류는 다음과 같다.

교통신문 기사 000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으로 인하여 국내에서의 사업이 어려울 것이라는 내용 등이 나타난다.

000의 성공을 위하여 각고의 노력을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본인의 부탁을 들어준 죄밖에 없는 청구인에게도 큰 피해를 끼치게 되어 억울하고 죄송스럽다라는 내용이 나타난다.

000의 급여정신 내역 및 재무상황 등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000의 주임으로 표시된 것으로 나타난다.

기사 공고문에는 000 명의로 공고한 것으로 나타난다.

000 본사에 장기출장 형식으로 보내어 교육을 보내기도 하였다.

운전기사 000는 내용이 나타난다.

000의 직접적인 관여를 받았다 는 내용이 나타난다.

000 출장을 갔던 내용이 나타난다.

청구인은 이외에도 000라고 주장하고 있다.

 

[관련법령]

국세기본법 제39(출자자의 제2차 납세의무)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2015.6.22. 법률 제1337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34(유상운송의 금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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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백재현 예결위원장, ‘제2의 국가발전·풀뿌리 민주주의’ 지방자치 구현
(조세금융신문=대담_김종상 발행인, 정리_고승주 기자, 촬영_이재하 사진작가) 납세자 권익 수호자에서 민생 지킴이로 처음엔 납세자였다. 아직 많은 것이 혼란스러웠던 1980년대. 당시 세무사였던 백재현 국회 예산결산위원장이 만났던 납세자의 얼굴들엔 적은 권리와 많은 의무로 얼굴 가득 깊은 고랑이 패여 있었다. 이는 단순히 개인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였고, 삼십을 갓 넘긴 해에 그는 광명청년회의소 문을 두드렸다. 광명시의 일은 광명시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시의 문제는 도에, 도의 문제는 중앙정부에 예속돼 있었다. 그는 계속 문을 두드렸고, 그렇게 기초의원, 광역의원, 자치단체장, 그리고 국회의원까지 도합 7선의 정치인생을 그리게 됐다. 올해로 정치입문 30년, ‘민생’ 두 글자만을 바라보며 지방과 중앙 양편을 오가며 밤낮을 뛰어온 백재현 국회 예산결산위원장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300명의 국회의원 중 백재현 국회 예산결산위원장(이하 예결위원장)의 이력은 매우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 세무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세무사를 거쳐, 지방정부를 거쳐 국회의원까지 올라간 사례는 사실상 백 예결위원장이 유일무이하다. 그의 세무사 등록번호는 2260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