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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先노동 後대가 그리고 프리랜서

(조세금융신문=송대영 디자이너, 문병윤 변호사) 사람들끼리 약속을 하듯 기업 간에도 약속을 한다. 당연히 사람과 기업 사이에도 약속이 있다.

 

자신이 앞으로 할 업무의 목적, 분야, 규모, 기간 등을 파악해서 그에 맞는 대가와 의무를 정하는 것.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계약’의 의미다.

 

하지만 지금 당장 주변의 디자인, 사진, 영상, 모델 등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지인을 붙잡고 물어 보라. 지금하고 있는 일이 계약서 작성 뒤에 시작된 일인지. 아니, 계약서를 써 본적은 있는지, 계약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지.

 

약자의 성과와 고용주의 버티기

오늘도 대한민국의 창의직군 프리랜서들은 오로지 자신의 정신과 몸을 무기로 숨 가쁜 경쟁사회의 정글을 헤맨다. 게다가 그 중 많은 이가 ‘선노동’, ‘후대가’란 불공정에 시달린다. 굳이 ‘후임금’이 아닌 ‘후대가’로 쓴 이유는, 돈이 아닌 물건으로 대가를 지불하는 기업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중고거래 카페에서 공연티켓을 직거래해 보라. 많은 판매자가 공연기획 종사자로, 임금으로 받은 공연티켓을 현금화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더 고약한 것은 대가를 아예 받질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점이다. 계약서가 없으니 대가도 없다. 지금 사정이 좋질 않으니 기다려 보라는 고용주의 한 마디를 믿고 수많은 날을 기다리다 결국 포기하는 사람들의 정신적인 고통과 그가 포기한 수많은 기회비용을 어떻게 보상할 생각인 걸까?

 

분명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관련법은 있다. 하지만 그 법의 보호를 받고자 조금이라도 어필하면 일이 줄어든다. 일이 줄어들면 수입이 줄고 생계에 타격을 받는다. 악순환이다. 정부를 비롯한 공공기관 역시 그 불공정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대부분의 공공발주사업들은 투명성을 위해 공개입찰로 사업자를 선정한다. 기자재 등 현물납품사업의 경우는 가격과 상품의 질 등에 따라 결정되지만, 공공홍보·디자인 등의 창조직군 사업 발주의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이런 사업은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사업성공의 시작이요 끝이기 때문이다.

 

공공홍보사업을 예로 들어 보자.

제안사는 해당 홍보사업을 위한 전략을 수립하고 슬로건, 대표 도안, 각종 온·오프라인 디자인 등 수많은 고민의 결과물들을 적게는 수십 페이지, 많게는 수백 페이지의 제안서에 빼곡히 채워 넣는다. 사업 크기에 따라서는 여러 명이 달라붙어 몇 주를 매진하는 경우도 많다.

 

만약 입찰경쟁에서 떨어진다면? 그냥 끝이다.

기관이 발주한 사업을 위해 노력했지만, 입찰경쟁에서 떨어진 기업에게는 그 어떤 보상도 돌아가질 않는다. 하다못해 제안서 종이 값이나 교통비도 주어지지 않는다.

 

‘창의성엔 대가를’ 정부부터 노력해야 세상에 성공확률 100%인 수주사업은 없다. 특히 디자인 등 창의직군 사업의 경우에는 성공을 담보하기가 더 어렵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특정사업에 투자한 재원에 대한 이익을 환수할 수 없을 경우, 해당 업무를 수행한 사람에게 어떤 보상을 할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수주가 담보되지 않는 사업제안 과정에 동원된 프리랜서에게 계약서를 써줄 리가 있겠는가. 이처럼 사업 수주에 따른 이윤은 기업의 몫이나, 수주실패의 리스크는 개인에게 전가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최근 광고 트렌드 중 하나는 ‘사람’이다. 모든 광고주는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고 외친다.

그 광고를 만든 사람은 어떤 대우를 받았을까? 정규직일까, 프리랜서일까? 최저임금은 받았을까? 계약서는 썼을까?

 

[프로필] 송 대 영
• 다수의 공공 브랜딩/캠페인을 총괄한 디자이너. 현재는 유브레인커뮤니케이션즈와 디자인스튜디오A의 아트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문변의 법률 솔루션]

민사관계를 지배하는 대원칙은 ‘사적 자치의 원칙’입니다. 사인 간의 계약은 그 내용, 대금의 액수, 지급방법, 기간, 손해배상 등 모든 내용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 어떤 계약도 완전히 호혜평등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갑을관계는 계약에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예외적으로 갑을관계 중에서 ‘을’을 특별히 보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경제주체 간의 균형과 조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한 정책적 결정입니다. 가장 강력한 보호방법은 그 사법상 효력을 부인해버리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주택(상가)임대차보호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하는 계약내용은 그 자체로 무효로 보는 방식입니다.

 

하도급거래 역시 수급인을 특별히 보호해야 한다는 판단은 있지만, 보호수준은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하도급법」에는 하도급대금직접지급청구권, 서면발행의무, 부당특약금지 등 각종 수급인 보호책을 규정하고 있지만, 이 규정을 위반했다고 해서 계약내용이 무효로 되지는 않습니다. 즉 어디까지나 ‘자력구제’인 셈입니다.

 

자력구제 방식의 가장 큰 한계는 ‘사후약방문’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수급인은 부당한 처우를 받을 때마다 이를 지적하며 그때그때 권리주장을 해야 합니다. 시기를 놓치면 보호받을 가능성도 낮아집니다.

 

또한 계약변경시 항상 증거를 남겨야 추후에 변경내용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부당하면 무효로 간주해 버리는 것과는 천지차이입니다).

정부는 개정된 「하도급법」에 따른 시행령을 발표하면서, 공급원가 상승에 따른 대금증액청구권, 전속거래 강요금지, 보복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등 다양한 개선안을 담았지만, 가장 중요한 서면계약관행을 개선할 수 있는 조치를 내놓지 못했고, 여전히 ‘자력구제’의 방식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다소 아쉬운 점입니다.

 

※ 참고 : 입찰제안 보상과 관련하여, 「공공디자인법」은 낙찰에 떨어지더라도 우수 제안서에 대해서는 일정부분 보상을 해주는 내용의 규정을 두고 있는데, 이처럼 각각의 영역에 별도로 보상규정을 만드는 방법도 나쁘지는 않아 보입니다.

 


[프로필] 문 병 윤
• 법률사무소 수영 대표변호사
•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 사시 54회(사법연수원 44기)
• 국회 보건복지위 행정안전위 비서관
• 더불어민주당 법률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