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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을(乙)이 죽을 때 병(丙)은 두 번 죽는다

하도급대금 ‘직접지급청구권’으로 보장 받자

(조세금융신문=송대영 디자이너, 문병윤 변호사)

 

“그거 알아? 삼 대가 저주받아야 (시각)디자이너로 태어나는 거.”


1998년 늦가을, 첫 직장에서 야근 중 을의 처지를 한탄하는 선배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20년이 흐른 지금도 그대로다. 갑을관계는 오히려 다양한 직군으로 확산되었고, 오히려 ‘전생에 나라를 팔아서’라는 수식까지 덧붙여졌다.


왜 조상까지 들먹이며 직업을 한탄하게 되었을까? 공익광고가 홍보하는 수많은 복지정책과 법률을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효과가 없다고 느낄까? 공정한 사회는 어디로 갔을까?


이 나라의 서글픈 업무환경의 민낯은 특히 창의적인 직업군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저도 돈 받을 수 있는 건가요?”


연간 수백 억원대의 연매출을 올리던, 홍보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기록하던 공룡기업 A사가 지난해 무너졌다. 그 여파로 수많은 하청기업과 프리랜서들이 돈을 떼일 위기에 처했다.


2016년 말 A사의 채권단 회의 참석 요청이 왔을 때 ‘X 밟은 셈 치고 지나가자’는 생각이 앞섰다. 미수금이 그리 많지 않았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가 겹치면서 참석하게 됐다.


회의에 나온 채권자들은 크게 네 부류로 나뉘어 있었다.
상황을 차분하게 관망하는 금융기업들, 앞쪽에서 큰소리로 항의하는 고액채권기업, 그 뒤에서 동조하는 소액채권기업, 그리고 회의실 구석이나 문 밖에서 조용히 듣고 있는 무리. 대부분 20대 여성들로 보이는 네 번째 집단은 프리랜서나 단기비정규직, 즉 알바들이었다.


“저, 저도 돈 받을 수 있는 건가요?”
문밖에 서 있던 일면식도 없는 학생이 내게 물었다. 단지 '받을 수 있다'고 대답하는 어른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를 만나야 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며, 무슨 서류를 준비해 어떻게 돈을 받을 수 있는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가장 먼저 세무서로 가서 법률상담을 받았다. 피해액에 따라 공탁금을 걸고 압류조치하란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이었다.

 

채권은 세금-공과금-임금채권-선순위 금융기관-하청업체 순이다. 이런 상황에서 작은 회사나 개인에게까지 돌아올만큼 돈이 남을 리 없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는 심정으로 내가 맡았던 프로젝트의 발주기관인 여성가족부에 사정을 설명했다. 홍보부서 담당자는 A사에 지급할 돈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담당자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내가 그 잔금을 직접 받으려면 ‘하도급법’의 요건인 ‘제3자직불동의’를 이끌어 내야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A사 사태로 인해 많은 중앙부처와 공공기관이 난관에 봉착했지만 작은 기업과 개인들까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도운 곳은 내가 알기론 여성가족부 홍보부서가 유일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주말 이틀뿐이었다. 다른 채권자들이 A사의 잔금채권을 압류하기 전에 모든 과정을 끝내야 했기 때문이다. 열심히 전화를 돌리던 토요일 하루가 다 지나가는 시점에서 매우 화가 나는 상황에 부딪혔다. 기업(사업자)이 아닌 개인은 ‘하도급법’이 보호하는 대상이 아니란다. 

 

그렇지만 이미 시작된 일이다. 멈출 수는 없었다.


소규모 채권단을 조직했다. 지급예정 금액이 상대적으로 많은 기업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몸으로 뛰는 건 내가 다할테니, 미수금을 받아내면 십시일반으로 프리랜서와 알바들의 돈을 책임져 달라고 했다. 19개 기업 모두 내게 흔쾌히 전권을 위임했다.


이제 2라운드. A사의 동의서를 받아낼 차례다.

 

물론 쉽게 동의해줄 리가 없었다. 인맥을 총동원했다. A사와 인연이 있는 기업의 대표님들께 설득을 부탁드렸다. 다행히 A사 내부에도 현재 상황을 어떻게든 끝까지 마무리하려는 책임감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늦은 밤 달려가 A사의 직인을 받아오던 그 날의 성취감을 잊을 수 없다.


창조직군을 냉대하는 시장
운이 좋았다. 2016년이 끝나기 며칠 전, 나를 비롯한 19개 사는 여성가족부로부터 요청금액 전액을 입금 받았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A사 사태에서 돈을 떼이지 않은 유일한 사례라고 한다. 약속대로 기업들은 내게 분담금을 지원했고, 나는 10여명의 프리랜서 디자이너, 강사, 알바생들에게 약속한 금액을 입금했다.


개인 개발자, 프리랜서 강사, 디자이너 등 창조직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인들은 국가의 가치를 높이는 가장 중요한 보물들이다. 


새 정부가 하청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노력을 폄하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부의 관련된 노력이 체감되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적어도 일선 현장에서는 아직도 20년 전과 같은 자조적인 말이 흔하게 쓰인다.


“그거 알아? 나라를 팔아 삼 대가 저주받아야 (시각)디자이너로 태어나는 거.”

 

[프로필] 송 대 영
• 다수의 공공 브랜딩/캠페인을 총괄한 디자이너. 현재는 유브레인커뮤니케이션즈와 디자인스튜디오A의 아트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문변의 법률 솔루션]

 

원청업체가 무너지면서 하청업체까지 줄줄이 쓰러지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나’는 A사의 빚잔치에서 순서를 기다려 돈을 받으라는 원론적인 답변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돌파구를 찾아냈습니다.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서 보장하는 ‘직접지급청구권’ 입니다.

 

‘직접지급청구권’은 ‘발주자-원사업자(원청업체)-수급사업자(하청 업체)’로 이어지는 연쇄사슬구조에서 하청이 원청을 제치고 발주자에게 직접 하도급대금을 받아낼 수 있는 권리입니다. 건설공사에만 한정되지 않고, 물품제조, 수리, 용역 등의 하도급에 모두 적용됩니다.


‘나’의 ‘디자인 작업’은 용역 하도급에 해당합니다. 다만, 사례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사업자가 아닌 개인의 자격으로는 직접지급청구권을 행사하기 어려우니 그 경우에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직접지급청구권’은 원사업자가 파산하거나, 원사업자가 기성대금을 2회분 이상 연체한 경우, 발주자-원청-하청 3자가 직접지급에 동의한 경우 등에 행사할 수 있습니다.

 

‘나’는 A사가 파산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재빨리 3자 동의를 이끌어 냈습니다(3자 동의는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직접지급청구권’은 하도급관계에서 약자인 하청업체를 보호할 수있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실무상 기성대금 연체의 경우에도 자주 활용되고 있는 만큼 원청업체의 부당행위로 인해 손해를 볼 것 같다면 너무 늦기 전에 ‘직접지급청구권’을 검토해야 하겠습니다.


[프로필] 문 병 윤
• 법률사무소 수영 대표변호사
•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 사시 54회(사법연수원 44기)
• 국회 보건복지위 행정안전위 비서관
• 더불어민주당 법률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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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일의 세상 돋보기]증삼살인을 방불케하는 의혹 ‘찌라시’
(조세금융신문=김우일 대우M&A 대표) 지방선거가 끝나고 경찰은 선거법 위반 관련하여 2000여건을 단속했다. 이번 선거의 특이점은 사전선거운동, 불법인쇄물배부, 금품제공 등 유형의 선거사범이 줄어든 가운데 가짜뉴스, 흑색선전 등 무형의 선거사범이 차지하는 비중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것이다. 전대통령의 탄핵에 따른 경쟁당의 지지열세로 인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경쟁은 상대당으로 하여금 다른 선택을 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전술전략으로는 승산이 없는 가운데 기울어진 판세를 기적같이 뒤엎기 위해서는 오로지 선거권자들에게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수밖에 없었다. 감정호소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상대방의 도덕윤리적인 치부를 흑색 선전하여 선거권자들의 마음을 빼앗는 것이다. 불륜, 부패, 비리 등을 드러내 혐오케 함으로써 표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가장 큰 심리적 충격요법이라 하겠다. 이와 더불어 SNS와 스마트폰의 확산 등 기술적 발달환경은 이 흑색선전이 사실인양 둔갑하여 순식간에 일파만파로 퍼지는데 크게 기여했다. 일단 퍼진 흑색선전은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불문하고 남의 말 좋아하는 호사가들에 의해 그럴 듯하게 꾸며지기 때문에 더욱 신빙성을
안택순 조세심판원장 “조세심판원, 억울한 납세자 위한 포청천 되겠다”
(조세금융신문=고승주 조세팀장, 박가람 기자) 조세심판원은 행정재판 전 억울한 납세자를 구제하는 기관이다. 동시에 과세관청이 정당하게 과세권을 행사하는지도 살핀다. 심판관은 법관처럼 검은 법복을 입지 않는다. 그러나 법관 못지않은 공정함과 법에 대한 헌신으로 사건의 단어 하나하나를 짚어낸다. 안택순 원장은 지난 4월 2일 조세심판원의 일곱 번째 원장으로 취임했다. 억울한 납세자가 한 명이라도 발생하면 안 된다는 그는 공정한 심판을 위해 경청과 겸손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숨결마저 텁텁한 푹 찌는 한 여름날, 서류 더미 속에서 작은 틈 하나 없는지 꼼꼼히 살피던 안택순 조세심판원장을 만났다. 기자를 보자 금방 따뜻한 표정을 맞으며 악수를 청하는 그의 손에선 세월의 단단함이 묻어났다. 국가 대표 공무원이란 자부심 탓인지 머리 매무새부터 옷차림까지 일목요연하다 싶을 정도로 단정했다. 그는 행시 32회로 공무원이 된 후 정부에서 업무가 가장 많기로 유명한 기획재정부에서 반평생을 보냈다. 맡는 일이 엄중하다 보니 빈틈 하나 허용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조세심판원을 소개하는 그의 어조는 평온하면서도 이웃처럼 친근했다. “조세심판원은 부당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