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나라 중년들이 온갖 시름으로 신음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미래가 불투명한 자녀를 보살펴야 하고, 부족한 살림에 각종 병치레로 고생하는 부모님들은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데 정작 본인들은 구조조정의 세찬바람에 휘청거리고 있다. 세대의 허리역할을 하는 중년이 강건해야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있을 텐데, 지금 우리 사회의 허리는 곳곳에 피멍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청년과 노년의 사이에 끼여 사회적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한 때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를 앞두고 잠시 불던 관심도 이제는 꺼져가는 모닥불 같다. 서울시의 50+재단, 고려대의 액티브 시니어 과정 등 일부 지자체와 대학을 중심으로 중년을 타깃으로 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사회에서 차지하는 중년의 비중을 생각하면 너무나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곳도 수도권 등 일부로 한정된다. 지방으로 가면 이마저도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중년을 위한 프로그램도 서울집중 현상이 극심한 나라가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다. 베이비붐 세대에 국한된 것이긴 하지만 중년에 대한 관심이 확 달아 올랐다 그마저 금새 식어버린 이면에는 중년이 누구인지, 즉 중년의 정체성에 대한 탐
[장면1] “나 자신이 일흔 살 되고 보니 옛날부터 드문 나이라던 시구가 맞는 말임을 알겠구나 자리에서 담소 나누는 이들은 모조리 새 얼굴 꿈속에서 단란하게 모인 이들만이 옛 벗일세 요동의 학처럼 고향 찾아와 슬퍼할 것까지는 없어도 빠른 말처럼 달리도록 누가 세월을 재촉하나? 남아 있는 몇 사람도 이제는 모이기 힘들어 새벽 별 드문드문 반짝이듯 흩어져 사누나“ (Bravo My Life, 2016/12월호에서 재인용) 이 시는 경현(警玄) 김효건(金孝建, 1584~1666))이 70세 넘어 쓴 ‘밤마다 꿈에서 죽은 벗을 본다’를 안대회 교수가 번역한 것이다. 오래 살다 보니 주변의 말동무들이 하나 둘 사라진 노년의 쓸쓸함을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그는 83세, 아내는 93세, 아들은 94세를 산 장수 가족이다. 양반 집안이라 먹고 사는 문제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웠다 하더라도 쓸쓸함은 비켜갈 수 없었던 모양이다. 장수의 역설이라고나 할까! [장면2] 광화문이 촛불로 타오르기 얼마 전 어느 날 오후! 늦은 점심을 위해 교보문고 뒤 현대화된 먹자빌딩 내 순두부집으로 들어갔다. 홀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기다리는데 앞 테이블에 7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10여분이 반주
인생에서 50대는 정말 중요한 시기다. 50대 10년의 강을 잘 건너야 100세 시대의 노후를 기약이라도 할 텐데, 조기퇴직자에게는 아득하기만 하다. 50대 10년의 강을 건너게 해줄배는 이미 난파되어 쓸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맨몸으로 강을 건너기 시작한다. 기진맥진하여 강을 건너가도 쇠락해진 기운을 북돋워줄 것이 별로 없다. 다시 있는 힘을 모아 기다시피 나아간다. 칠순에 도달하면 더 이상 나아갈 길도 막힌다. 어쩔 수 없이 경주에서 퇴장한다. 그에게 남은 것은 탈진한 정신과 멍든 육체뿐이다. 앞길이 막막하다. 그를 반겨주는 곳은 빈곤층의 활짝 열린 대문뿐이다. 50세 전후에 조기 퇴직한 사람의 일생을 비유적으로 묘사해본 것이다. 상상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의 세상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요즘을 퇴직자 양산의 시대라고 부른다. 주력산업의 구조조정과 금융권을 중심으로 한 화이트칼라 계층의 조기퇴직 상시화 등으로 한창 일할 나이의 사람들로 퇴직의 길이 북적인다. 정년연령을 60세로 연장한 의미가 옹색하다. 누구를 위한 정년연장인지, 무엇을 위한 정년연장인지 의심까지 하게 된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는 공무원, 공공기관ㆍ사
(조세금융신문=손성동 연금과 은퇴 포럼 대표) 퇴직자들이 느끼는 첫 번째 좋은 감정은 뭘까? 바로 자유시 간이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니 좋고, 일하지 않아도 되니 좋고, 하고 싶은 것 맘대로 할 수 있으니 좋다. 이렇듯 시간은 퇴직자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후일을 기약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을 함부로 다루면 시간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 이게 시간의 룰이다. 퇴직자들이 시간의 룰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우선 퇴직 후 시간의 크기를 가늠해볼 필요가 있다. 시간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은 퇴직자들이 임의로 활용할 수 있는 가용시간의 크기다. 가용시간은 퇴직 후부터 사망할 때까지의 총시간에 서 수명ㆍ식사ㆍ개인유지 등 필수시간과 침상에 누워 지내는 와병시간을 뺀 것을 말한다.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 결과를 토대로 계산해보면 총시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필수 시간이 49.5%, 와병시간이 1.7%, 가용시간이 48.8%다.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퇴직자의 가용시간은 퇴직시점과 사망시점에 따라 다르다. 50세에 퇴직하여 90세에 사망하는 사람의 가용시간은 17만 995시간이다. 이를 한국인의 연간 노동시간(2163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