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장성보험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종신보험과 CI보험의 경우 ‘건강체할인’제도가 있다. ‘건강체할인’이란, 건강체와 표준체를 구별하여 건강체인 경우, 연령별 위험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략 5~10%의 보험료 할인 혜택이 주어진다. 여기서 건강체의 조건은 ‘비흡연자 중 BMI지수(키와 몸무게의 비율)와 혈압 그리고 기병력사항을 보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지금 흡연자라면 1년간 금연하고 건강체에 도전하면 되겠다. 일단 건강체로 판정되면 앞으로의 보험료는 물론 기납입 보험료까지 소급하여 차액만큼 환급된다.
‘건강체할인’ 하면 떠오르는 고객이 있다. 몇 년 전 'K사‘에서 전국GA(법인대리점)의 지원업무를 담당하고 있을 때 강남에 있는 ‘A법인’에서 급한 전화가 왔다. 강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전화 속 목소리의 주인공은 늘 성격 급한 김 팀장이었다. 미국에서 몇 년간 살다 오셨어도 사투리만큼은 지워지지 않는 모양이다.
‘지금 비서를 통해 인적사항을 보낼 테니 종신보험 중 건강체로 설계하여 가격경쟁력이 있게 하고, 3일 후 동행해 달라’는 요지였다. 비서를 통해 받은 피보험자의 인적사항은 ‘S대학병원’ 치과 과장으로 근무하는 정(鄭)교수로 나이는 마흔 초반에. 남편 또한 같은 병원에 근무하는 부부의사이기도 하였다.
자료를 바탕으로, 주계약 10억에 기본보험료는 대략 130만 원대 후반으로 설계되었으나 ‘건강체할인’을 적용하니 110만원 안팎으로 나왔다. 건강체할인을 받으려면 반드시 비흡연검사 및 ‘건강검진’이나 보험사가 인정하는 지정병원(종합병원)의 최근 6개월 이내의 ‘대용진단서’가 필요하다. 보험료 낙폭이 클수록 건강검진을 통과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더불어 커진다. 정확히 3일 후, 김 팀장의 승용차로 정 교수가 근무하는 ‘S대학병원’으로 향하는 내내 머리 한쪽에서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정교수와의 면담(P/C)은 순조로웠다. 특히 건강체할인으로 인한 착한 보험료에 아주 만족했다. 또한 차후 남편의 종신보험 및 자녀들의 건강보험까지 가입하기로 약속했다. 건강검진은 대용진단서를 제출하였고, 몇 가지 추가적으로 필요한 부분은 추가하여 검진을 마무리 지었다.
며칠 후 언더라이팅 부서에서 건강검진에 대한 회신이 왔다. 가슴에 ‘섬유선종’ 및 ‘미세석회화’ 증세가 보이며, 이로 인해 5년 이내 유방암으로 갈 확률이 15% 정도 예상된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건강체할인이 안 되며, 그나마 종신보험도 조건부(부담보)로 가입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딱, 혹 떼려다 혹 붙인 경우가 되고 말았다. 이럴 경우 계약자를 설득하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것이, 담당FP를 설득하는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결과를 통보받은 김 팀장은 예의 엑센트 강한 경상도 사투리로 전화가 바로 왔다. “엄 팀장님이요, 일을 우예 이레 합니까? 마, 된다 카지 않았습니까? 이제 우짤라능교?, 책임지소 마! 엄 팀장님 아니었으면 벌써 ’H사’로 넣었을 거구만요!”
아프다! 눈앞의 추가계약까지 날아갈 판이니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김 팀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당하는 나는 아프다!
‘GA'의 장점은 참 많다. 그중 하나가 여러 회사의 상품을 비교하여 입맛에 맞는 원보험사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회사마다 약간씩 다른 언더라이팅 제도를 활용할 수 있음도 장점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이런 이유로 ‘GA’는 원보험사에 언제나 수퍼갑(甲)이다. 나를 자극한 김 팀장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A사’에서 점유율을 올리고 싶은 원보험사 관리자로서의 자존심이었는지 나는 그 길로 언더라이팅 부서의 입사 1년 선배 윤 부장을 통해 담당이사와 면담하였다. 담당이사는 전문가(의료진)의 자문을 의뢰한 후 동일한 답변을 하였다.
자리로 돌아와 고민하던 끝에 ‘의적판단’을 최종 결정하는 ‘의장’께 면담을 요청했다. 의장께선, 일선 부서 실무팀장(부장)의 면담을 흔쾌히 응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경청해주시고 ‘다시 한 번 방법을 찾아보겠노라’약속도 하였다. 면담 중에 ‘같은 의사로서 역선택은 아닐 것이라는 의사의 양심을 믿습니다’라는 말이 아직 귀에 생생하다.
성격 급한 김 팀장의 닦달 속에 며칠 지난 어느 날 심사결과를 최종 통보받았다. 재보험사 인수조건으로 원안대로 승낙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K사’는 두 곳의 재보험사와 업무 제휴 중이었는데 한 군데에서만 ‘인수한다’는 후일담까지 알게 되었다. 당시 단 한 건의 계약을 재보험까지 가입하면서 최선을 다해준 ‘K사’ 의장과 그런 기업문화가 지금 생각해도 고맙고 훈훈하다.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 며칠 후 김 팀장을 사무실 앞 커피숍에서 만났다. 예의 그 큰 목소리와 사투리로 ‘내사마 갱년긴지 얼굴도 빨개지고, 목소리도 커지고, 팀장님이요 내 때매 욕봤습니더! 참말로 고맙습니더’라는 소리에 내가 더 홍당무가 되었다.
그리고 몇 년 지난 엊그제 최근 소식이 뜸해 궁금해 하던 차에 전화가 왔다.
“팀장님요, 그때 제가 팀장님 덕분에 재밌게(?) 일했고, 지금은 영등포서 사회봉사 단체를 하나 운영합니다. 놀러 함, 오이소 마!”
여전한 사투리가 반갑다. 퇴근길에 한번 들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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