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 지목은 중앙정보부의 몫 은행장의 임기 3년. 그러나 시중은행 정관의 임기는 한낱 장식품에 불과하였다. 대부분의 행장이 임기 전에 사임했다. 그렇다고 모든 행장이 임기를 못 마친 것은 아니다. 2~4개 은행을 돌면서 행장만 10여년 지낸 직업이 은행장인 행운아도 있다. ‘빛 좋은 개살구’라 할 수 있는 행장이 있는가 하면, 제왕 (帝王)처럼 갖은 부귀를 다 누린 행장도 있다. 관치금융의 그림자는 은행장이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5. 16 군사혁명이 발발한 1961년. 일 년 사이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금융의 민주화가 아니라 어떻게 경제건 설에 봉사하느냐가 관건으로 변화하였고, 정부의 직접지배 하에 놓인 은행은 본격적 관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금융인들이 무소불위의 쿠데타 세력에 맞서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군정 초창기에는 살벌한 총칼의 서슬에 밀렸을 뿐만 아니라 혁명에 대한 다소간의 기대감도 작용하여 협력을 선택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 한편 정부 손에 넘어간 시중은행들은 어떠했을까. 급작스런 쿠데타로 시중은행 역시 쑥대밭이 됐다. 현역 은행장들은 모두 체포되거나 사임하고, 임원들도 대부분 퇴진이 불가피했다. 혁명정부 실세들
관치금융을 벗어나기 위한 정부의 형식적인 규제 하지만 암울한 긴 터널을 통과하는 관치금융은 언젠가는 밝은 햇살을 맞게 마련이다.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신탁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민영화는 그로부터 무려 20년 이상 넘은 후에야 김재익(金在益) 청와대 경제수석의 주도로 5공 정권 신군부의 살벌한 독재체제 하에서 논의되었다는 것은 주목할 일이다. 1982년에야 민간주도형 경제운영방식으로의 전환을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금융부문에서는 시장원리에 의한 금융 운용과 금융기관 간 경쟁촉진을 통한 금융의 효율성 제고를 도모하기 위하여 시중은행의 민영화 및 내부경영에 대한 규제 완화, 금융업에의 차입제한 완화 등이 이루어졌다. 먼저 금융산업의 중추인 은행금융기관의 자율경영체제 확립을 위해 정부는 1981년 한일은행의 정부보유주식을 일반에 매각하는데 이어 1982년에는 제일은행과 서울신탁은행, 그리고 1983년에는 조흥은행의 정부보유주식을 민간에게 매각함으로써 1972년에 이미 민영화된 상업은행을 포함하여 5개 시중은행이 모두 민영화되었다. 1972년의 상업은행 민영화 시에는 이 은행의 자본금을 40억원에서 66억원으로 증액하되 정부가 신주인수권을 포기하고 그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