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정치적 세무조사나 형사 처벌 없는 대기업·대재산가 탈세.’ 한승희 국세청장 취임 후 첫 관서장 회의에서 부정한 과거와의 고리를 개혁과제로 지목했다. 외부전문가를 위촉해 투명성을 보장하겠다고는 하지만, 과거 정부에서도 비슷한 위원회와 슬로건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간판만 새로 달아선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국세청 스스로 환부를 도려낼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정치적 세무조사는 국세청의 숙명처럼 여겨져 왔다. 과거 국제그룹과 명성그룹, 태광실업, 최근에는 다음카카오까지 정권의 도마 위에선 국세청의 칼춤이 번뜩였다. 이제 그 날선 춤사위가 개혁의 과녁에 올라섰다. 새 정부가 신설한 국세행정 개혁TF(이하 개혁TF)의 화살은 세무조사 개선과 조세정의 혁신을 겨냥하고 있다. 그 시위의 절반 이상은 외부위원들이 당기고 있다.
세무조사·조세정의 각 분과당 위원은 9명으로 외부가 5명, 내부가 4명이다. 분과장은 외부위원이 맡고, 총 TF단장 역시 외부위원을 맡는다. 내부위원은 부단장과 분과별 업무를 조율할 간사만 담당한다.
인선만 살펴보면, 개혁의지는 다소 선명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초대 단장이자 세무조사 개선 분과장은 강병구 인하대 교수가 맡았다. 그는 전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소장이 기도하다.
강 교수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부자감세와 그로 인한 세무조사 강화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수차례 드러낸 바 있다. 대신 세무인프라 확충과 탈세에 대한 충분한 벌칙을 상속·증여이슈에 대해 완전포괄주의의 실효성 확보를 강조해왔다.
구재이 한국조세연구포럼 학회장(전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부소장), 김경만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납세자 권익보호와 과도한 조사재량권 방지를 강조해왔던 인물이며, 최원석 한국납세자연합회 사무총장(현 서울시립대 교수) 역시 국세청의 과도한 조사권 행사방지에 대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올려왔다.
특히 구 전 부소장은 조세절차법이나 일본처럼 조세전문법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기도 했다. 이중교 연세대 교수는 법으로 세무조사 선정과 절차를 통제해야 하고, 모호한 질문조사권의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고 보고 있는 인물이다.
조세정의 분과 외부위원들의 면면도 만만치 않다. 분과장은 김호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 부의장인데 대기업·고소득층의 편법적 부의 이전에 대해 법의 테두리 내에서 강경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보는 인물이며,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 윤재원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는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 유효수요창출과 공정한 세무집행을 강조해왔다.
박명호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장기재정전망센터장은 고소득자 탈세일수록 처벌수준이 낮다고 진단한 바 있다. 그는 세무조사 역량을 대폭 강화하고, 특히 고도화되는 기업전산에 발맞추기 위해 포렌식(Forensic) 기능 확충을 강조하기도 했다.
문 닫힌 개혁과제, 폐쇄성이 문제
새 정부, 각 부처의 적폐 개선으로 실효적 활동될 것
하지만 개혁적 인선이 개혁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각각 출범 직후 국세청을 개혁한다며 국세행정개혁위원회(이하 개혁위)를 꾸렸다. 둘 다 객관적인 외부의 시선을 빌려 국세행정을 개혁하겠다는 취지였다. 구성원 중에는 개혁적인 인물들이 상당했다. 이 중에는 김 경실련 부의장, 이 연세대 교수, 윤 홍익대 교수, 박 서울시립대 교수 등 현재 개혁TF멤버도 있었고, 납세자연합회, 조세재정연 구원 등의 학자들도 개혁위 위원을 배출했다.
개혁위 내부에선 국세청이 전문가들의 말을 경청하고, 이를 반영하려는 태도가 뚜렷하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조세정의 부문에서 여론의 반응은 참담하다.
지난 1월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박명호 선임연구위원의 '납세에 관한 일반 국민들의 인식 변화 분석'에 따르면, 응답자 중 43.9%가 국세청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보통이라는 유보적 대답은 42.4%였으며, 신뢰한다는 답은 단 13.6%뿐이 었다.
매번 탈세해도 잡힐 가능성이 작다는 사람은 79.3%, 적발 돼도 처벌이 약하다고 답한 사람은 46.0%에 달했다. 적발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경우 탈세할 의향이 있는가에 대한 설문 에서는 44.1%가 하겠다고 답했다. 앞선 2010년, 2012년 조사 때보다 퇴보한 것이다.
정치적 세무조사 관련해선 해결의 물꼬를 찾기 어려웠다. 국회에선 매년 국정감사에서 관련된 사항을 질의했지만, 국세청의 굳게 닫힌 입을 열 수는 없었다. 국세기본법 제81조의 13, 비밀유지 조항이 그 방패였다.
2015년 국정감사 당시 홍종학 의원은 ‘국세청의 중수부’ 서울청 조사4국이 5개월간 다음카카오에 특별세무조사를 실시했지만, 추징세액은 노력에 비해 크지 않다고 비판했었다.
7년간 다음카카오를 세 번이나 조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란 비판도 곁들여졌다. 세무조사는 피조사 기업의 부담이 상당하기 때문에 보통 4~5년 주기로 실시한다. 당시 야당 상임위원들은 서울청 조사4국장에게 표적조사 아니냐, 특별 세무조사의 절차상 문제는 없느냐는 취지로 질의했지만, 국세청은 비밀유지를 이유로 답변을 회피했다.
국회 국정감사실무자들에게 국세청의 불통은 식상할 정도다. 취재를 통해 만난 다수의 국회 보좌관, 비서관들 역시 ‘익 명처리로 공개 가능한 사항도 제출하지 않는다’, ‘반쪽짜리 자 료제출’, ‘국세청의 자료거부가 상임위 중에서도 특히 심하다’ 며 토로했다.
국세청이라고 마냥 속편한 건 아니다. 국세청 실무자들 역시 정해진 범위에서 자료를 제출해야하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고 말한다. 일각에선 국세청이 폐쇄적인 입장을 계속 유지한다면, 새 정부의 개혁TF도 전 정부의 개혁위들처럼 ‘출범 취지만 외과수술, 실제론 약방문 처방’이 될 것이란 우려를 내놓고 있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그간 국세청의 개혁시도 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세무조사 철폐나 고액탈세에 대한 엄정한 대응 등 납세자들이 원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며 “비실효적 위원회, 국세청의 폐쇄성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개혁TF 외부위원은 “아직 활동조사 시작하지 않은 개혁TF에 대해 운영 방향성이나 활동내용에 대한 언급을 하기는 어렵다”라며 “다만, 새 정부가 각 부처의 적폐에 대한 개선에 비중을 싣고 있는 만큼 과거보다 실효적 활동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下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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