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가 담을 넘을 때_정끝별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시인] 정 끝 별 1964년 전남 나주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과와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198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삼천갑자 복사빛』 『와락』 『은는이가』 시론평론집 『패러디 시학』 『천 개의 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