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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얼굴여드름흉터제거, 레이저 치료시 피부상태에 맞는 방법 적용해야

(조세금융신문=이준영 기자)맑고 쾌창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야외활동도 자연스레 많아지고 있다. 요즘 같은 시기에는 강한 자외선에 땀과 피지분비가 활발해져서 여드름을 비롯한 각종 피부트러블이 쉽게 생길 수 있다. 

 

다른 피부질환처럼 여드름도 적절한 관리가 중요하지만 전문적인 치료보다 자가치료를 하거나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드름을 절대 사소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여드름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더라도 여드름흉터나 여드름붉은자국, 여드름색소침착 등으로 발전하면 보기에도 좋지 않고 치료도 까다로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급적이면 여드름을 만지거나 짜는 행동은 피해야 하며, 피부과에서 조기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요즘은 여드름 치료뿐만 아니라 여드름흉터 치료도 과거에 비해 용이해졌다. 보통 피부과에서는 여드름흉터 제거에 레이저를 주로 활용하는데 시술 전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며, 여드름흉터의 정도에 따라 적절한 방법을 적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레이저 박피술은 모공이나 작은 여드름흉터에는 물론 깊고 심한 여드름흉터에도 효과는 좋지만, 붉은기가 3~6개월 이상 가는데다 통증이 심하고, 색소침착 같은 부작용이 발생 할 수 있다.

 

또 프락셔날 한 방법의 레이저는 작은 여드름흉터에는 비교적 효과적이지만 깊고 심한 롤링 형태와 아이스픽 형태의 여드름흉터에는 효과가 적다. 

 

이밖에 흉터부위에만 타겟하여 레이저를 쏘는 방법은 깊고 패인 여드름흉터에 효과가 좋지만, 작은 모공까지 하나하나 치료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작은 모공까지 치료를 원한다면 프락셔날한 방법과 병행하는 것이 좋다. 게다가 흉터부위에만 시술하기 때문에 의사의 많은 시술경험과 섬세함이 필요로 하는 시술이다. 

 

이러한 레이저 치료는 시술 직후 개인에 따라 시술부위가 붉어지거나 부기, 열감, 통증 등을 느낄 수 있으며, 시술 후 피부가 건조해질 수 있으므로 수분크림, 재생크림을 지속적으로 발라주는 것이 좋다.

 

강남 아이러브피부과 이상민 원장은 “빠르고 효과적인 여드름흉터 치료를 위해서는 피부과 레이저 시술을 고려하기도 하는데, 이는 시술 경험이 풍부한 여드름흉터 치료를 전문적으로 하는 피부과에서 단계별 피부상태에 따른 맞춤치료 및 시술을 진행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말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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