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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행복한 노후 경제적 · 심리적 독립이 중요

걱정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 등록 2014.05.20 17:11:41

 

조영석.bmp

(조세금융신문) 부모를 봉양한 것처럼 그 자녀들이 자신들을 그렇게 봉양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50~60대가 보험처럼 생각했던 그들 자녀들은 부모를 봉양하기는커녕 자신과 처자식을 부양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부칠 지경이다.

 
우리 역사상 가장 역동적으로 일했던 그 세대는 이제 가장 불우한 노년을 보내게 될 처지가 된 것이다. 늙음, 노후에 대한 개념과 준비가 부족했거나 없었던 탓이다.


가수 최백호 씨는 말한다. ‘60세 이후 세상이 달라 보인다. 모든 의무에서 해방된 삶은 행복하다’. 모든 의무에서 해방되고 오로지 나에 대한 의무만 남았을 뿐이다.


2014년 3월 서울 노고산동에 살고 있던 67살 정 씨는 자신의 화장 비용 100만원을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뉴스의 한 내용이다.


누구에는 의무를 다해 행복한 삶이 되는가 하면 누구에게는 극단적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노후가 되기도 한다.


이는 두 가지 문제로 함축된다. 하나는 노후를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노후를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 문제다.


프로쿠루스테스의 침대

고 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일격이 당신의 생명을 빼앗는다’는 예언자의 계시를 받고 있었다. 하늘에서 무언가 내려 올 일이 없는 드넓은 평야에 기거했으나 날아가던 독수리가 깨뜨려 먹기 위해 던진 바다거북이에 맞아 죽었다. 결론을 알게 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이 말을 진짜 스피노자가 했는지, 그 심오한 철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는 아이스킬로스에게 묻는다.


무엇이 그대를 그렇게 두렵게 하는가.
철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영주가 제안한 교수자리도 거절하고 평생 안경 알 깎는 일을 한 스피노자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걱정으로 한 평생을 보내는 아이스킬로스(그럼에도 불구하고 70세에 사망했으니 당시로는 꽤나 오래 산 편이다)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이야기 해준다.


지금 노후를 걱정하는 50~60대가 왕성하게 활동한 시기였던 20~30대에는 노후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자신들이 준비해야하는지 문제다.

노후를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해답은 아니지만 EBS 방송에서 의미 있는 실험을 했다.
피실험자들이 방송국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촬영한다. 피실험자들을 두 그룹으로 분류하고, 한 그룹에게는 젊음, 도전, 태양 등 희망적인 단어가 적힌 낱말카드를, 한 그룹에게는 질병, 늙음, 슬픔등 우울한 단어가 적힌 낱말 카드를 보여준다. 그리고 집에 가게 한다. 진짜 실험은 지금부터다. 그들이 나가는 모습을 다시 촬영하고 방송국에 처음 들어 올 때의 걸음걸이와 비교한다.


실험 결과는 놀랍다. 희망적인 단어가 적힌 낱말카드를 본 그룹은 들어 올 때 걸음걸이보다 나갈 때 걸음걸이가 훨씬 활기차고 빠르게 나타나고, 우울한 단어가 적힌 낱말 카드를 본 그룹은 방송국을 나갈 때 발걸음이 훨씬 느려진 것이다. 각각의 그룹에 두 종류의 낱말만 보여 주었을 뿐이다.


나이듦에 대하여 우리는 두 가지 태도를 본다. 노후를 죽음의 전단계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가수 최씨처럼 행복의 시작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쇠약, 질병, 죽음, 슬픔이라고 하는 기존의 관념으로 노후를 재단하려하면 우리의 노후는 그리될 것이다. 누가 이런 우울함으로 가득찬 침대에 우리를 누이려 하는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점에서 할 말을 잃는다.


같은 방송국에서 행한 또 다른 실험은 실험 실시 후 일주일이 경과한 후 5명의 참가자 모두에게서 신체적 기능 및 정신적 기능이 유의미하게 향상되었다. 높았던 혈압은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고, 0.4였던 시력이 0.8까지 높아졌으며, 지팡이 없이는 5m 거리를 왕복하기도 어려웠던 한 참가자는 지팡이 없이도 계단을 오르내리는 놀라운 변화를 보여주었다. 언어유창성 등 인지기능이 향상되는 것은 물론 심지어는 목주름이나 눈 밑 주름이 늙음도 선택할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다큐 프라임 ‘황혼의 반란’에서는 100세 시대를 맞아 건강과 노화에 대해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실험했다. 실험은 70~80대의 노인 5명을 일정한 실험환경에서 7일간 생활하게 하고 신체 및 인지기능 검사를 진행하여 실험 전후 참가자들에게 어떤 변화가 나타났는지 조사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개선되는 외모상의 변화까지 일어났다. 실험환경은 단순했다. 고령의 실험 참가자들이 중년 시절이었던 30여 년 전을 상기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고 그 환경에서 7일간 생활하게 한 것뿐이다. 다만 일정한 생활 수칙을 제시했을 뿐이다. 이 실험을 최초로 고안한 엘렌 랭어 교수는 이에 관하여 명쾌하게 정리한다.


‘몸과 마음은 하나이다. 어디에 마음을 놓든지 신체 또한 그곳에 놓이게 된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삶의 이치이지만, 의식을 집중해서 산다는 것은 늙어가는 것조차 선택이란 것을 의미한다.’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많지 않겠지만 나이를 먼저 인식하면 나이에 갇히게 된다. 위 사례에서 보았듯이 나이가 들었더라도 그 사람의 사고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실증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못하니까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하는지 가늠해 볼 일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고민할 부분은 어떻게 노후를 준비할 것인가 문제다. 행복한 노후를 보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여건이 필요하지만 그 중 중요한 것은 경제적 독립과 심리적 독립이다. 


자녀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은 자신의 생존은 물론 자존감 있는 노후를 보내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평생 모은 돈을 자녀들 양육, 학비, 결혼비용으로 다 소비하고 정작 나를 위해서는 남겨진 게 없어 이제 나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과 직면하게 된다.
절대적 소비 주체였던 자녀는 이제 아무 말이 없다. 지금 한두 자녀만 두고 있는 대부분의 젊은 부모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한두 자녀만 가지고도 힘들다면 자녀를 낳지 않을 것이고 낳더라도 그들에게 지출되는 내역은 종전과는 다른 패턴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이제까지는 자녀에 올인하는 식으로 지출이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자녀와 본인의 노후를 감안하여 지출하는 패턴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러기 아빠는 현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회현상이지만 이런 부조리한 현상은 과도기적인 것으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극단적인 교육 형태는 교육을 과도하게 소비하는 것으로 기본적으로 오래 갈 수 없는 유형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요즘 유행하는 재무설계는 보험회사의 영업적인 측면이 있더라도 우리에게 합리적인 지출을 하게 하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다.


100세 시대에 살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수입을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이 시점에서 가장 현명한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봐 야 할 부분이다.


노후는 이런 재무적인 측면에 머물러 있지 않다. 1974년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소득과 행복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있다. 이스털린에 따르면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소득이 늘어나도 행복이 더 커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를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이라고 한다. 노후를 오로지 재무문제에 국한해 바라보는 시각으로는 올바른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녀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하는 일은 경제적 독립 못지않게 중요하다.


일전에 아들의 성적이 떨어지면 그 때마다 아들을 골프채로 때려 부상을 입힌 어머니가 급기야는 아들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녀에 대해 과도하게 간섭한 부모는 필연적으로 자녀 의존적이 될 수밖에 없다. 위 학생의 어머니는 홀로 아들을 키워 왔고 아들 외에는 희망이 없는 세상을 살아 왔다. 결국 그런 심리상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아들에게 의존하도록 만들었고 이 의존성은 결국 아들을 질식하게 만든 것이다.


결혼해 출가한 자녀에게 수시로 전화를 하거나 시도 때도 없이 자녀로 하여금 찾아오게 하는, 장성한 자녀가 보이지 않으면 올 때까지 전화를 해대는 부모는 필연적으로 자녀에게 의존적이 된다.


문제는 부모가 자녀에게 의존적이 되면 될 수록 정작 자녀는 그런 부모의 의존성을 부담스러워하거나 회피하려한다는 점이다. 당연히 괴리가 생기고 그 괴리는 갈등을 불러온다.


많은 부모는 자녀를 자신의 분신으로 인식한다. 그 순간 부모는 이런 덫에 빠지기 쉽다.


의학잡지 발행인 김 씨는 원래 의대 출신이다. 잘 나가던 의사를 그만두고 의학잡지를 만들겠다는 그의 말을 들은 아버지의 한 마디는 시체 말로 쿨하다. ‘그건 네 인생이다’라고 하는 부모는 자녀의존적 성향을 갖지 않는다. 자녀를 간섭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독립된 인격체로 보는 것이다. 당연히 부모와 자녀 간에는 갈등이 조성될 일이 없다.


인생에는 행복할 때가 있는가 하면 힘든 날도 있다. 인생도 이런 저런 나이테를 갖는다. 잘 쓴 시나리오, 잘 찍은 드라마가 종반 부분에 갑자기 허망하게 끝나도록 할 수는 없다.


서머셋 모옴은 인간의 굴레에서 ‘인생은 페르시아 양탄자와 같다’고 했으니 노후를 어떻게 생각할것인가, 노후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모두 나의 손에 달려 있다.
 

조영석 부천대 교양학부 교수(現)/ (주)Consulting & Service 대표이사(역임)/ REM 연구소소장(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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