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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한국경제 비화 ㊴]금록통상 박영복 사건(Ⅱ)

<전편에 이어>

 

(조세금융신문=이국영 前 은행감독원 검사역) 박영복의 신용장 위조방법

 

신용장은 어떻게 위조했는가 ?

신용장 통지은행과 융자은행간에 신용장 대사가 허술한 점을 이용하였다. 홍콩에 있는 중국연합은행(中國聯合銀行 UCB)과 관계를 가진 외환은행이 문제다.

 

UCB에서 외환은행에 L/C를 보내오면 외환은행이 중소기업은행 등에 이러한 L/C가 왔다고 고지해 준다. 통지를 해주고 그 마스터 L/C를 박영복에게 건넨다. 외환은행 담당자가 “직접 보내겠다”고 하면, 박영복은 “L/C를 가져야 지방지점에도 가고 상공부에도 가니, 마스터 L/C를 가져야 일이 된다”고 말했다.

 

박영복은 홍콩의 수입상인 교포 김경평(金慶平)과 공모하여 UCB를 통하여 특수조건부 신용장을 개설하였다. 통지은행 외환은행에서 박영복 관계인들이 받아다가 이것을 조건부를 삭제하고 아무 조건이 없는 크린 L/C처럼 가장하였다. 박영복은 외환은행을 통하여 정당히 수령한 특수조건부 신용장을 감추고 대신 위조신용장으로 시중은행에서 수출금융을 받아 냈다. 총 위조신용장은 81건에 달하였다.

 

그런데 특수조건내용은 “이 신용장에 의한 수출대금의 지급은 별도 개설은행이 수출품의 수량 매입금액 선편 선적일자를 지정하는 조건의 변경통지가 없는 한 지급에 응할 수 없음”으로 되어 있었다. 사실 이러한 조건을 붙인 L/C를 발행하는 사례가 없다. 이 조건 자체도 문제가 되는데 이것을 외환은행 담당자들이 사전에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도 한심스러운 일이다.

 

박영복은 신용장용지와 홍콩정청의 인지(印紙)도 소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만든 신용장을 아무도 위조된 신용장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위조임을 은폐하기 위하여 일부는 정상 신용장으로 수출을 대체 이행하였다.

 

무역금융이 수출불이행 등으로 제재를 받아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되면 다른 회사를 신설하여 다른 은행에서 동일한 방법으로 접근하였는데, 신설회사의 대표자 임원 등을 새로운 사람으로 임명하였고, 거래은행에서는 수출불이행에 따른 제재조치 내지 다른 은행과의 거래상황을 전혀 알 수 없게 하였다.

 

무역금융의 우대지원제도를 최대한 악용하여 신용장이 자동적으로 자금이 지원되는 이점을 활용, 신용장 주담보와 명목적인 부담보제 등을 교묘하게 악용하였다. 은행이 예금유치와 예금주를 우대하고 편의를 제공하는 심리를 이용하였다.

 

국회에서 금록통상에 대한 질의

 

국민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던 금록통상 박영복 사건은 4월 30일 검찰수사전모발표와 함께 정치적인 측면과 금융 행정적 측면에서 원인분석과 함께 앞으로의 대책에 대하여 논의가 무성하였다.

 

1974년 5월 7일 오전.

남덕우(南悳祐) 재무부장관은 이 사건에 대한 국회 재무위에서 은행감독원에서 작성해준 내용을 토대로 차근차근 무거운 음성으로 상세히 예를 들어가며 보고하였다.

 

그가 보고한 내용에 의하면 금록통상의 사기융자가 74억원이 아니라는 설명과 아울러 손실추정액을 밝혔다.

 

“1970년 12월부터 1974년 4월까지 금록통상 등 박영복이 경영한 18개 업체에 대한 금융기관의 총거래액 누계는 71억 8800만원으로 그중 절차상 하자가 없다는 의미에서 정상거래라고 볼 수 있는 것이 41억 5900만원이고, 부당거래액은 30억2900만원입니다. 한편 총 거래액 중에서 4월 20일 현재 이미 상환된 액수는 46억 5700만원에 미상환액수는 25억 3100만원이 됩니다.”

 

세상에 이미 알려진 74억원 부정대출과 비슷한 숫자를 총액으로 내놓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추정손실액이다. 그의 설명이 이어진다.

 

“서울은행이 13억 1200만원으로 제일 많습니다. 담보로서는 현재 13억원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어디까지나 대출당시의 평가액으로 실제 얼마나 손실이 날 것이냐 하는 것은 원자재 또는 부동산을 처분해 보아야 확정되겠습니다. 현재 이 원자재가 모피라고 했는데 이것은 등급이 많고 국내에서는 제대로 감정할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홍콩에 사람을 보내서 현재 평가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중소기업은행, 상업은행, 신탁은행 등은 부동산담보, 예금, 원자재가 있어 부족채권이 없다는 설명이다. 결국 박영복이 사기융자해간 돈은 서울은행 13억원뿐이라는 설명이다.

 

또 원자재 등의 재감정결과 및 타은행담보 여력의 활용, 부동산 등의 실제처분액과 박영복 기타 관련자의 은익재산 및 채권 등의 색출결과에 따라서 약간의 손실액에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재무위 신민당 이중재(李重載)위원은 이 사건을 단순하게 보지 않았다.

 

다음날 5월 8일.

“금융의 권력 또는 권력을 등에 업고 금융에 개입하는 것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이 문제를 있는 그대로 척결(剔抉)을 해야 되겠습니다. 또 여러 가지 금융이 편중되고 따라서 금융질서가 문란하고 금융이 민주화가 못된 점을 쇄신해야 되겠다는 전제아래 이 문제를 다루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신민당 이중재 위원은 이충환, 김현기, 박영록 위원들이 요구한 자료목록을 종합하여 남덕우장관에게 요구했다. 그리고 다음날 남덕우 장관에게 제출하지 아니한 경위를 따지는 것이었다.

 

“소위 재벌 100억원 이상 대출된 업체와 금액과 그 내역의 제출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또 무담보대출 1억원 이상된 업체와 건수와 내역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은행법 제27조 4호 단서에 의거해서 한국은행 은행감독원장이 승인한 때 또는 한국은행법의 정한 정부대행기관에 대한 대출은 예외로 한다’라는 이 예외규정은 어떠한 업자나 은행을 고의적으로 악용해서 편중융자를 해주었는데 내가 알기로도 54건에 1000억원 이상 됩니다.

은행법 제27조 4호에는 금융통화위원회가 일정한 금액을 초과하는 융자신청에 대해서는 사전승인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비위사실이 있다고 은행감독원이 지적하고 이것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고 어떠한 조치를 금융통화위원회에 건의한 검사서를 요구했습니다.”

 

금록통상 외에 은행에서 대출된 거액융자를 모두 다루겠다는 으름장을 놓았다. 실로 방대한 자료를 요구하였다.

 

또 금록통상에 대해서는 밀수와 원자재 유출문제도 따졌다.

 

“수출금융규정 제11조에 대한 자료는 L/C 가액의 90% 이상을 이행했을 때는 별도지만 90% 이상을 이행하지 못했을 경우는 여기에 대한 제재조치가 가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971년부터 1974년까지 금록통상의 수출, 수입의 품목, 가격, 일시를 건별로 제출해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이 자료제출문제로 왈가왈부하면서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신민당의 박영록(朴永祿) 위원은 정치적으로 확대하고 나섰다.

 

“이번 사건이야말로 검찰이 발표한 그러한 정도의 금융부정사건이 아니라 우선 정부가 조국근대화작업의 최고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증산 수출 건설이라고 하는 이 대명제와 함께 구현하고 참여한다고 하는 구실과 명분 밑에 국가안보의 중책을 맡아보고 있는 정부 내의 특수기관간부가 정부의 각 부처에 깊숙이 참여를 하고 그 권력을 최대한도로 남용 악용하고 그 업자와 결탁해서 돈을 벌면 그만이라고 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건국 이래 여러 가지 부정사건이 있습니다마는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대정치권력형 금융부정사건이라고 본 위원은 보는 것입니다.”

 

배후가 있다는 말인데 과연 배후는 누구인가? 중앙정보부의 김보근 수사관과 박태룡(朴太龍) 감찰과장이 박영복의 배후인물로 지목되어 검찰의 조사를 받고 나온 일이 있는데 이를 두고 한 발언이었다. 남덕우 재무부장관, 김성환 한은 총재, 조진희 은행감독원장을 참석시킨 3일간의 질의 답변은 장황한 질의와 얼버무리는 변명성 답변으로 일관하였다.

 

신민당 이충환 위원이 금록통상에 대한 처리방안을 위원장과 각 교섭단체에 맡겨서 조속한 시일내 처리방안을 작성해서 재무위에 보고해 주도록 제의하고 신형식(申泂植) 위원장은 이를 간사에게 위임하고는, 이 사건에 대한 상임위 질의를 끝내고 말았다.

 

‘금록통상 주역들’ 유죄 판결

 

1974년 1월 25일 중소기업은행은 관계직원에 대한 인사조치가 있었는데 면직이 3명, 감봉 등이 12명이었다.

 

또한 이 사건으로 은행장 정우창이 2월 14일 오후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뇌물수수)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한편 서울은행은 4월 9일 김정수 차장과 안영호, 박수웅 대리를 면직시켰다. 그리고 4월 16일자로 은행장 심병식(沈炳植) 씨가 사임하게 되었다.

 

박영복 사건의 재판결과를 보면 박영복은 1심 판결에서 징역 15년이 선고되었으나 1974년 11월 28일 항소심 판결에서 양형부당 또는 [사실오인]이라 하여 15년의 반 이하인 7년을 선고하였다. 그러나 1975년 7월 25일 재항소심에서 공문서위조죄를 적용, 징역 10년을 선고하였고, 대법원에서 1975년 11월 26일 징역 10년 그대로 확정되었다.

 

한편 중소기업은행 은행장 정우창은 1심에서 징역 3년 추징금 85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항소심 판결에서는 정 행장에 대하여 정 행장은 박영복으로부터 1700만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공소사실부분에는 증거가 없다고 무죄를 선고하고 업무상배임죄만 적용 징역1년 집행유예 3년의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하여 재항소심에서는 1975년 2월 21일 300만원의 뇌물을 정 행장에게 주었고 정 행장이 이를 받았다고 시인한 점에 유죄를 인정하여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추징금 400만원을 선고하였고,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확정되었다.

 

이밖에 항소심 판결공판에서 김영환 씨에게는 양형부당 이유로 원심(징역 5년)을 깨고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하였고, 박영오 등 4명에게는 집행유예 또는 선고유예 판결이 내려졌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프로필] 이국영 前 은행감독원 검사역
• 효도실버신문 편집국장·시니어라이프 연구소 소장

• 전)한은 사정과장과 심의실장

• 저서 「금융기관 자점감사론(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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