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시 / 나호열 (낭송 최경애)
맹목으로 달려가던 청춘의 화살이
동천 눈물 주머니를 꿰뚫었는지
눈발 쏟아지는 어느 날 저녁
시인들은 역으로 나아가 시를 읊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 사이에
장미가 피고 촛불이 너울거리는 밤
누가 묻지 않았는데 시인들의 약력은
길고 길었다
노숙자에게 전생을 묻는 것은 실례다
채권 다발 같은 시집 몇 권이
딱딱한 베개가 될지도 모르겠다
어둠한 역사 계단 밑에서 언 손을 녹이는
불쏘시개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늘이 내리시는 무언의 시가
발밑에 짓이겨지는 동안
가벼운 재로 승천하는 불타는 시가
매운 눈물이 된다
아, 불타는 시
[시인 나호열]
1953년 충남 서천 출생
경희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198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담쟁이 넝쿨은 무엇을 향하는가』 『집에 관한 명상 또는 길찾기』
『망각은 하얗다』 『아무도 부르지않는 노래』 『칼과 집』 『낙타에 관한 질문』
『그리움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 『눈물이 시킨 일』 『촉도』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 등
1991년 《시와시학》 중견시인상 수상
2004년 녹색 시인상 수상
[詩 감상 양현근]
눈발이 성성하게 흩날리는 날
눈발이 대지 위에 하얀 시작노트를 펼쳐보이는 날
뜨거운 청춘들의 맹목이 삼삼오오 역에 모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풀어놓은 감성이,
그리고 오래 참은 독백이
뜨거운 시가 되어 하늘로 승천하고 있다
채권 다발 같은 어수룩한 사연들이
노숙자에게 밥 한 끼의 위로도 되지 못하는 시편들이
오늘은 많은 이들의 뜨거운 눈물이 되고,
질컥하게 가슴을 덥히는 중이다
[낭송가 최경애]
시마을 낭송작가협회 회원
계간 《힐링문화》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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