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공평과세'. 김현준 신임 국세청장이 지난달 인사청문회에서 거듭 언급했던 단어다.
문재인 정부 국세행정 기조는 크게 ‘개혁’과 ‘공평과세’로 나뉜다. 앞선 2년간 국세청은 다수의 개혁과제를 통해 고질적 관행을 철폐하고, 국세행정의 패러다임에 혁신을 가져왔다.
세무조사에서는 표적조사가 사라졌고, 지방국세청의 독립성이 확대되고 있다. 대기업에 대해서도 탈루혐의가 뚜렷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정기조사체제를 구축했고 영세납세자에 대해서는 세무조사를 유예하거나, 조사라기보다 세무컨설팅에 가까운 간편조사를 강화하고 있다.
현장소통도 강화됐다. 한 달에 두세 번 형식적으로 이뤄지던 소통이 현장상주형 여론수렴, 세무지원 체계로 전환했으며, 납세자가 정책건의를 할 수 있는 통로도 확대했다.
조직 개혁은 수직적 내부문화 개선이 눈에 띈다. 현장소통팀에서는 각 세무서, 지방청 운영지원 조직 관계자들이 서로 고충을 나누고 도울 수 있는 협력적 관계로 조직문화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김 청장은 이러한 개혁의 유산을 기반으로 공평과세로 나아가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고액체납자 엄단’ 국회 협조 확보가 관건
공평과세를 위한 당면 과제는 고액상습·역외탈세 차단이 첫 손에 꼽힌다.
현 정부 들어 국세청은 추징액수 늘리기보다 불공정한 탈세행위를 얼마나 정확히, 실수 없이 짚어내는가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특히 강조되는 것은 호화생활을 누리는 고액상습체납자 엄단이다.
세무조사 관련해서는 과세품질 혁신추진단, 조사심의팀 등의 인프라가 확립돼 있으며, 체납의 경우에는 김 청장이 세청 징세법무국장 직위를 맡은 바 있어 은닉재산 추적분야에는 일가견을 갖추고 있다. 국세청 내부의 준비는 어느 정도 갖춰진 셈이다.
다만, 이같은 국세청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협조가 필수다.
정당한 사유 없이 5000만원 이상의 세금을 체납한 이들 중 재산해외도피 우려가 상당한 사람에 대해서 출국금지를 할 수 있는 여권법 개정과 고액체납자의 배우자,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까지 금융조회를 할 수 있는 은닉재산 추적법(금융실명제법 개정) 등은 이미 수년 전부터 추진된 국세청의 숙원사업이지만, 소관 상임위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여권법은 국회 외통위와 외교부가 과도한 개인 자율 침해라며, 논의 자체를 진전시키지 않고 있다.
정무위 소관인 은닉재산 추적법은 금융위 내 상임위 내 부정적 기류를 형성하는 가운데, 상임위원 간 금융조회 범위를 친척 6촌·인척 4촌으로 할 것이냐, 친척 4촌·인척 4촌으로 할 것이냐를 두고 지루한 공방을 거듭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4차 반부패정책협의회를 통해 여권법 개정과 은닉재산 추적법에 대한 범부처 협력을 주문하고, 이에 앞서 열린 국무총리 주재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호화생활 악의적 체납자에 대한 범정부적 대응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물꼬를 텄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그간 국회 외통위와 정무위 양측에 입법 필요성을 거듭 설득해 왔다. 이미 양측의 논리는 더 발전하지도, 퇴보하지도 않는 단계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는 의원들의 이해를 구하고, 여야의 협조를 얻어내는 일이 남아 있다.
일각에서는 "국회의 협조를 얻어내는 것이 김 국세청장의 정무적 감각을 시험하는 첫 무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신종 역외탈세 대응’ 국제공조·자체분석 강화
역외탈세에 대한 대비는 다각도로 진행되고 있다.
기재부는 앞서 OECD 회원국들과 중국과 인도 주요국가들이 참여한 소득이전을 통한 세원잠식(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 프로젝트에 따라 기업의 국제거래, 해외 계열사 정보를 제출하는 국가별보고서 도입까지 마쳤다.
또한, 조세회피처 지역을 포함한 100여개가 넘는 다국가간 금융정보교환 체계도 구축됐다.
하지만 실무상에서는 여전히 넘어야 할 벽들이 있다. 국가 간 공조체계 인프라가 있기는 했지만, 국가별 이해관계가 달라 실제 공조는 여전히 시스템이 아닌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 것이 많다.
어느 국가나 자국의 과세권을 보호하려는 속성이 있고, 중국과 EU 등 일부 국가는 거주지국 과세에서 원천지국 과세를 강화하고, 구글 등 디지털 기업이 많은 미국은 거주지국 과세를 여전히 강조하고 있으므로 국가별 이해의 격차를 넘어야 한다.
이러한 일은 모두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기획재정부와 여타 부처의 공조도 있겠지만, 가장 앞장서야 하는 것은 국세청이다.
역외탈세 실무부문에서는 고도로 변화하는 역외탈세 유형 대응 문제가 있다.
올 초 국세청은 ▲조세회피처 실체(Entity) 이용 탈세 ▲미신고 역외계좌·부동산 보유 ▲해외현지법인 이용 비자금 조성 ▲중견기업·자산가, 전문직 소득은닉을 중점관리대상으로 꼽고, 해외 손자회사 통한 소득은닉, 해외 독점사업권 무상이전, 해외신탁·펀드 통한 편법 증여 등 신종유형에 대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세청은 본청 이전가격 심의회 설치 통한 중요사안 심의 강화, 다국적기업 정보분석시스템 구축 등 추진하고, 이전가격 조작, 조세조약 혜택남용, 디지털 IT기업 과세회피 등 다국적기업의 공격적 조세회피에 대한 체계적 검증을 강화할 전망이다.
역외탈세 기획·실행에 관여한 전문조력행위에 대한 정보수집·조사를 강화하고 조세포탈 공범처벌 등 관련 제도 개선에도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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