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하구에 와서 / 허영숙 (낭송 : 향일화)
하류에 당도하였으니 오백 리 물길
굽이굽이 둘러본 날이 어제의 일이 되었습니다
검문도 없이 국경을 넘은 듯
바다로 쉽게 빠져나간 그대는
맹물의 시절을 버리고 간기를 지녔으니
모든 물새의 혓바닥에 비릿하게 휘감기겠지만
명경의 물속을 거슬러 오르는 은어의 몸짓을
다시 담을 수 없습니다
그대가 씻기고 간
강돌의 맨들맨들한 얼굴을 다시 볼 수 없습니다
여기 와서 그대를 놓아주고 이름조차 파랗게 읽어야 하므로
안개처럼 피던 배꽃도
감질나게 닿았던 강섶도
둥글게 몸을 말아
강바닥에 가라앉은 이마를 들여다보고 있는 나도,
그대가 밀물로도 다시 거슬러 올 수 없는
먼 윗목입니다
[시인 약력] 허영숙
2006년 《시안》으로 등단
2018년 <전북도민일보>소설부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바코드》,《뭉클한 구름》 등
2016년 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감상 양현근]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樹木等到花 謝才能結果, 江水流到舍 江才能入海 : 화엄경)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것을 버려야 보다 큰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섬진강 상류를 흘러내린 강물이 바다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동안 몸과 마음을 의탁한 작은 강둑을 비우고 강마저 버려야 합니다. 보다 넓은 세상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자 진통입니다. 세상에 고통없이 그저 이뤄지는 일들은 없는 법입니다. 섬진강 하구에 와서 비로소 깨닫는 삶의 비의(秘義)이자 깨달음입니다.
[낭송작가 향일화]
시마을 낭송협회 고문
《시와표현》 시부문 등단
빛고을 전국시낭송대회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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