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박가람 기자) 수입 맥주 4캔에 만원 시대. 수입 맥주 인기를 증명하듯 지난해 맥주 수입액은 전년보다 44.9% 늘어난 2억6309달러를 기록했다.
이렇게 국내로 들어와 소비되는 맥주도 많지만 유통기한이 짧은 주류의 특성상 폐기되는 맥주양도 상당하다. 2년 전 1046톤이던 수입주류 폐기 중량은 지난해 1816톤이나 폐기됐다. 이렇게 판매되지 못하고 폐기되는 물량은 세재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
관세청은 ‘수입 물품에 대한 개별소비세와 주세 등의 환급에 관한 고시’에 따라 주류수입업체가 변질이나 품질불량 등으로 주류를 폐기할 경우, 수입 시 납부했던 주세와 교육세 등을 환급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수입업체가 세관에 폐기 신청을 하면 세관 직원은 폐기업체에 직접 가서 확인하고 세금을 환급해준다.
성남세관에서 심사징수 업무를 맡고 있는 이호식 관세행정관은 직원들이 일주일에 한 번꼴로 가던 폐기업체 방문 등 업무가 많아지자 직접 현장을 찾았다.
“캔·병에 담긴 맥주가 그대로 소각·매립되고 있었습니다. 유리랑 알루미늄은 재활용할 수 있는데 말이죠. 게다가 수도권매립지는 이미 포화상태라 하고….”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환급신청을 하러 온 수입업체 측이 말하길, 창고에 폐기해야 할 재고는 쌓였는데 소각 일정 잡기가 너무 어렵대요. 한 업체는 창고료만 2억원이 든다고 토로하더라고요.”
이 관세행정관과 직원들이 현장에서 확인해본 결과, 폐기처분될 맥주처럼 불연성 물질은 소각하면 미세먼지·다이옥신 등이 배출되기 때문에 1일 투입 허용량을 제한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각업체들이 단속을 피하기 위해 10~15일치를 모아서 한꺼번에 투입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수입업체가 소각 일정을 잡기 어려웠던 것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해서 지역 재활용 센터며 사업장폐기 업체 등 적합한 폐기업체를 수색했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습니다. 환경공단에도 직접 가서 물어봤는데, 아무리 찾아도 적합한 폐기업체가 없대요. 난관에 봉착한 거죠.”
현장의 문제점을 알아낸 이 관세행정관과 직원들은 이 같은 상황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내용물과 포장 용기를 분리할 수 있을까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병따개 달인 영상을 찾아보기도 했어요. 인터넷에서 규모가 큰 재활용 업체를 찾아서 새로운 분리 폐기방안을 제안했지만 대부분 거절했어요.
그러던 중 올해 1월에 경기도 포천의 한 폐기업체로부터 새 폐기방안을 수용하겠다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직접 만나서 수차례 설득한 결과가 통했습니다.”
삼고초려 끝에 얻어낸 ‘친환경’
이 관세행정관과 직원들이 고안해 낸 폐기방안은 포천의 한 폐기업체가 재활용 설비를 제작하며 실현됐고 이후 개량과정을 거쳐 이 업체는 현재 재활용 관련 허가와 장비 특허도 받았다.
성과도 대단했다. 알루미늄과 유리는 재활용하고 맥주 원액은 퇴비화해 환경문제를 해결했고, 신속한 폐기처리도 가능해졌다. 기존에는 1회 10~20톤, 월 최대 20~40톤 가능했던 폐기 처리가 이제 1회 100톤, 월 처리횟수 제한 없이 가능하다.
자연스레 주류업체 측이 부담해야 했던 창고 보관료는 줄어들었고, 직원의 출장도 줄게 돼 행정비용도 절감효과까지 톡톡히 보고 있다. 소각비용도 이전보다 절반 정도 저렴해졌다.
성남세관을 찾아와 어려움을 호소했던 기업체에서는 관세청 홈페이지 ‘칭찬합시다’ 게시판에 글을 남겨 감사 표시를 했다. 이 같은 사례는 지난 9월 열린 ‘2018년 관세청 정부혁신 우수사례 공유대회’에서 우수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관세행정관의 노력으로 이제는 내용물이 들어 있는 모든 용기를 폐기하는 대신 일부는 재활용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사실 이 사례뿐만 아니라 폐기되는 물품들 중에 재활용해서 쓸 수 있는 것들이 꽤 있습니다. 예를 들면 검역불합격한 수입 소고기 같은 경우엔 사료로 쓸 수 있죠. 이 부분은 검역본부와 협의해 한 번 진행해 볼 예정입니다. 전국 세관에도 이미 몇 차례 방법을 전파했고, 앞으로도 폐기의 패러다임을 재활용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하려 합니다. 지역의 경우 사업체나 폐기업체들이 마음을 열고 새로운 방안을 받아들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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