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 시를 읽고 있으면_이생진
시 읽는 건 아주 좋아
짧아서 좋아
그 즉시 맛이 나서 좋아
'나도 그런 생각하고 있었어'
하고 동정할 수 있어서 좋아
허망해도 좋고
쓸쓸하고 외롭고 춥고
배고파도
그 사람도 배고플 거라는 생각이 나서 좋아
눈 오는 날 시를 읽고 있으면
누가 찾아 올 것 같아서 좋아
시는 가난해서 좋아
시 쓰는 사람은 마음이 따뜻해서 좋아
그 사람과 헤어진 뒤에도
시 속에 그 사람이 남아 있어서 좋아
시는 짧아서 좋아
배고파도 읽고 싶어서 좋아
시 속에서 만나자는 약속
시는 외로운 사람과의 약속 같아서 좋아
시를 읽어도 슬프고 외롭고
시를 읽어도 춥고 배고프고
그런데 시를 읽고 있으면
슬픔도 외로움도 다 숨어 버려서 좋아
눈 오는 날 시를 읽고 있으면
눈에 파묻힌 집에서 사는 것 같아서 좋아
시는 세월처럼 짧아서 좋아
[시인] 이 생 진
1929년 충남 서산 출생
1969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으로 『그리운 바다 城山浦』 『거문도』
『외로운 사람이 등대를 찾는다』 『그리운 섬 우도에 가면』
『반 고흐, ‘너도 미쳐라’』 『산에 오는 이유』 『어머니의 숨비소리』
『오름에서 만난 제주』 『섬 사람들』 등 다수
1996년 윤동주 문학상, 2002년 상화(尙火)시인상 수상
[詩 감상] 양 현 근
시가 읽히는 세상은 아름답다.
한 줄의 시가 비록 현실을 구제할 수는 없지만
영혼이 외로운 이들에게
때로 밥 한 공기 만큼의 따뜻한 위안은 되지 않겠는가
한 줄의 시가 있어 세상은 살만하고
시를 읽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다
[낭송가] 이 루 다
시마을 낭송작가협회 회원
계룡시낭송대회 대상 등
시콘서트 및 각종 문화제 등 진행자
아동문학가, 한국어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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