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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연소득 대비 원리금 1.5배 넘으면 신용대출 못 받는다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 도입, 200% 넘으면 담보대출도 '불가'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앞으로 연소득 대비 원리금이 1.5배를 넘을 경우 신용대출을 못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총체적상환능력비율(이하 DSR)이 26일부터 도입되기 때문이다. DSR은 신용대출 등 모든 대출에 대한 원리금 상환액을 연소득으로 나눈 비율을 말한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들은 대체로 DSR 상단을 100%로 잡고, 신용대출의 경우 150%, 담보대출은 200%를 대출 가능한 한도로 설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소득 5000만원인 사람이 연 4.0%의 금리로 10년간 5000만원을 빌렸을 경우 DSR 비율은 14%로, 연간 상환금 500만원, 연 이자 200만원을 더한 값을 연소득 5000만원으로 나눈 값이다.

 

KB국민은행은 고DSR 분류 기준을 100%로 잡고, 종류에 따라 대출을 제한하되 신용대출은 DSR 150%, 담보대출은 200%를 넘길 경우 대출을 거절한다.

 

우리은행은 DSR 100% 이상인 경우 1~3등급까지만 대출을 허용하며, 4등급~6등급의 경우엔 DSR 비율이 100~150% 사이에 해당하면 본점에서 별도 심사를 통해 대출해주며, 150%를 초과할 경우 대출을 자동거절한다.

 

7등급 이하는 DSR과 무관하게 본부에서 개별 심사한다.

 

NH농협은행은 신용등급 7~10등급의 경우 신용대출 시에는 DSR 100%, 부동산 담보대출 시 DSR 150% 초과시 정밀심사에 착수한다.

 

KEB하나은행의 고DSR 분류 기준은 100%이며, 신용대출은 신용평가사 신용등급 8등급 이하, DSR 150% 초과의 경우, 담보대출은 신용등급 9등급 이하, DSR 200% 초과시 원칙적으로 거절한다.

 

신한은행은 DSR 100% 초과 시 이를 고DSR로 분류하고, 상품별로 대출취급 제한선을 따로 둔다. 신용대출의 경우 DSR 100~150% 사이에 대해서는 신용등급에 따라 대출 가능 금액을 제한하고, 150%를 초과할 경우 본부에서 심사한다.

 

담보대출의 상한선은 신용등급에 따라 최고 DSR 250%이며, DSR 200%를 초과 시 신용등급과 무관헤게 본부에서 별도로 심사한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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