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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D램 생산능력 늘릴수도…장기지배력 강화 포석"


메모리 반도체의 초호황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내년에 D램 생산능력을 확대하며 경쟁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2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시장조사업체인 D램익스체인지는 최근 이런 분석을 내놓으며 "D램 공급이 빡빡한 상황이 예상보다 오래가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D램익스체인지는 최근 2년간 제한적인 생산능력 확대와 첨단공정으로의 전환에 대한 제약들로 D램 공급의 증가가 더뎌졌다고 설명했다.

   

반면 D램의 수요는 크게 늘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D램 제품의 가격은 치솟기 시작했다.

   

D램익스체인지는 "그러나 삼성이 경쟁을 확대하고 시장 진입장벽을 높이기 위해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고 밝혔다.

   

D램익스체인지는 "이렇게 되면 D램의 공급 부족 상황이 당초 예상보다 일찍 끝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업체는 "(삼성의) 생산능력 증대는 표면적으로 보면 지금의 빡빡한 공급 상황을 누그러뜨리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하지만 그 기저에 깔린 동기는 가격이 더 올라가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이 이런 전략을 택한다면 단기적 영향은 감가상각비를 증대시키고 D램 사업의 수익성을 약화시키게 된다.

   

그러나 삼성의 궁극적인 목표는 막대한 생산능력과 경쟁사들을 1∼2년 앞서는 기술력으로 시장에서의 장기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것일 수 있다고 D램익스체인지는 분석했다.

   

SK하이닉스나 마이크론 같은 경쟁자들이 D램 시장의 호황을 누리며 번 돈으로 생산설비를 크게 늘리거나 기술 혁신에 나설 기회를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D램익스체인지는 삼성이 이런 전략을 택할 경우 중국의 메모리 산업을 견제하는 효과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 업체는 "중국의 메모리 산업이 형태를 갖춰가고 있고 내년에는 개발 단계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의 D램과 낸드플래시 제조업체들이 따라잡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삼성은 생산능력을 키우고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펼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렇게 하면 잠재적인 시장 진입업체들은 무거운 재정적 압박에 시달리며 생산능력을 확대할 수 없게 되고, 일정대로 기술 개발에 나설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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