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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국세청 1급 고위공무원 지형도…호남출신 ‘7년’만에 등용(下)

한승희 국세청장 첫 인사 키워드 ‘지역 탕평·젊은 인재·공채 육성’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명퇴 2년룰’…사람이 부족하다


인사에서 또 다른 변혁과제로 대두되는 것은 ‘2년룰’이다. 2년룰은 5급 이상 관리직이 정년(60세)보다 2년 앞서 명예퇴직하는 전통으로, 선배들이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비워준다는 의미에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 전통은 전 부처에서 국세청이 유일하며, 정년에 구애받지 않는 정무직인 국세 청장마저 결과적으론 2년룰 내에서 임기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2년룰’이 지고불변의 원칙이 아닌 국세청에만 적용되는 임의적 불문율이란 점에서 변동이 생기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제시된다. 한 청장이 행시 33회인데 행시 34~35회 국장급 인재는 단 4명뿐이다.


실제 김영삼 정부에서 임채주 10대 국세청장은 1937년생으로 명퇴시기가 1996년(1998년 이전까지 5급 이상 공무원 정년은 61년, 이후 60년으로 변경)이었지만, 1995년 12월 국세 청장이 돼 1998년 3월까지 근무했다. 또 김대중 정부에선 안정남 12대 국세청장이 1941년생으로 1999년 명퇴였으나, 1999년 5월 국세청장이 돼 2001년 9월까지 근무했다.


1급 인사의 경우 박찬욱 32대 서울청장은 1948년생으로 2006년 명퇴지만, 2006년 4월 서울청장을 맡아 2007년 4월 까지 근무했다.


장춘 2대 중부청장은 1944년생으로 2002년 명퇴인데 2001년 10월 중부청장에 임명돼 2003년 4월까지, 김정복 5대 중부청장은 1946년생으로 2004년 명퇴인데 2004년 1월부터 2005년 3월 중부청장으로 임명된 후 2005년 6월엔 보훈처 장까지 올라갔다. 후배들을 위한 용단에도 예외는 있었던 셈이다.


2년룰에 따라 1급 공무원들의 시간은 서대원 차장 2020년, 김희철 서울청장 2018년, 김용균 중부청장 2021년, 김한년 부산청장 2019년으로 한정돼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 극한의 검증으로 발탁된 인재이고, 후배들이 올라오기엔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일부 예외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국세청 외부 관계자는 “2년룰의 전통이 나름의 충분한 의미는 있다”면서 “유능한 인재 중용을 위해선 특별한 경우 예외가 있을 필요도 있다”고 전했다.


‘김현준·김명준·유재철’ 젊은 피 대거 수혈



한 청장의 첫 국세청 국장급 인사에서 가장 눈여겨볼 인물은 단연 김현준 조사국장(1968년생, 경기, 서울대, 행시 35회)과 김명준 기획조정관(1968년 생, 전북, 서울대, 행시 37회), 유재철 법인납세국장(1966년생, 경남, 서울대, 행시 36회)이다. 고위공무원 나급에 승진한 지3~4년 차 국장들이다.

조사국장은 국내 전체 조사를 총괄한다는 점에서 기업에 국세청장 인선만큼이나 주목받는 자리며, 베테랑 중 베테랑이 가는 자리이다. 어느 정도 현장과 기획에서 경륜 있는 인재가 발탁되는데 실제로 21대부터 38대까지 조사국장의 평균 연령명퇴가 5.7년 남기고 보임을 받았다. 이는 명퇴까지 9년 남은 김 국장이 얼마나 촉망받는 인재인지를 증명한다.


김 국장은 한 번 가기도 어렵다는 청와대 파견만 두 번을 거쳤고, 대전청과 중부청 조사국에서 조사지휘를 했으며, 2016 년 본청에 들어와 징세법무국장, 기획조정관 등을 거쳤다. 국세청 국장급이라면 대부분 개인생활을 포기해야 하지만, 그중에서도 김 조사국장은 공직에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고위공무원은 2014년 1월 승진했다.


김 기획조정관은 서울청에서 국제거래조사국장직을 수행하다 일약 본청 기획조정관으로 발탁된 인재로 고위공무원 승진은 2014년 7월에 했다. 기획조정관도 조사국장 못지않게 경륜을 쌓은 인물에게 주어지는 자리다. 1968년생인 김 국장 에게는 이르다는 후문도 나온다.


하지만 새 정부에 맞춘 절묘한 인선이란 평가도 나온다. 새정부는 청와대를 젊은 인재들로 대거 배치했는데 한 청장 역시 여소야대 정국과 개혁 기조의 정부란 점에서 지력 외에도 체력적으로도 감당할 인재를 고려했으리라는 것이다. 또한 혁신기획, OECD 대표부, 정책조정 등을 맡은 바 있어 업무 수행에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다. 다만, 중요한 시기에 중책을 맡은 만큼 업무부담은 과거 그 이상의 수준이 될 전망이다.


유 법인납세국장은 1966년생이긴 하지만, 최근 사례를 볼때 역시 젊은 법인납세국장에 속한다. 승진시기는 2013년 6월로 다른 두 명보다 빠른데 국장급 보직에서 최중요 요직 중하나인 서울청 조사4국장을 맡았다는 점에서 그다지 이례적인 인사는 아니라는 평가다.


초임세무서장과 초임국장, 외부파견 등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경력을 서울청 조사국과 국세청에서 보낸 인물인데, 조사국이 주된 경력이긴 하지만, 개인납세국, 법인납세국, 전산 정보관리관 등 다방면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다. 지난 정부에서 서울청 조사4국장을 맡았지만, 성실히 본분을 다했다는 점에서 한 청장의 부름을 받았다고 알려진다.

 

‘오덕근·윤종건’ 공채출신 유능인재 발탁


과장급 인사에서는 소수의 공채출신 인물에게 초점이 모인다. 현재 비고시 출신 중 국세청 실무과장의 주축은 세무대 출신이지만, 세무대가 2001년 19회를 마지막으로 폐지되면서 국세청 전체 인구에서 세무대의 비중을 줄어들게 된다. 이어 국세청은 2020년 이후 관리자급 육성을 위해 7급 출신의 전략적 육성계획을 수립·추진하고 하다.


국세청 본청의 경우 윤종건 국세청 자본거래관리과장이 지난 7월 부름을 받았다. 윤 과장은 1966년생, 경남창녕 출신 으로 7급 공채로 공직에 입문했으며, 주로 조사국에서 경력을 쌓다가 사무관 승진 후 본청 공보1계장으로 중용됐다. 2016년 동안 동래세무서장을 지낸 후 지난해 연말 서울청 조사3국 조사관리과장을 맡았으나 7개월 만에 긴급 공수됐다. 통상 1년마다 보직이 바뀐다는 점을 볼 때 다소 이례적이긴 하지만, 유능인재의 육성차원에서 1년 반 만에 다시 본청 무대를 밟게 됐다는 평가다.

 

오덕근 국세청 납세자보호담당관은 1963년생, 경기 안성 출신으로 7급 공채로 공직에 입문했다. 오 과장은 국세청 3사로 일컫는 조사, 감사, 인사를 모두 경험한 인물로, 서울청 조사4국 2과장을 거쳐 지난해 4월부 원천세과장으로 본청에 합류했다. 본청 합류 후엔 홈택스 등에서 제공하는 연말정산 서비스의 폭이 커지면서 각종 격무를 치렀다. 중요 보직을 다수 수행했다는 점에서 유력 부이사관 승진 후보자로도 이름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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