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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목상 2인자’ 국세청 차장, 다시 ‘실세’ 부상하나

예산 등 내부운영 담당…본청 조사국장 역임 시 국세청장 승진 사례 다수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새정부 들어 전 부처 고위직 인사에서 달라진 기류가 감지되는 가운데 그간 ‘보좌’의 영역에 머물렀던 국세청 차장의 위상이 올라갈지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국세청 차장은 명목상 국세청장 바로 아래인 이인자로 여겨지나, 실제로는 가장 일 많고 힘든 반면 재량은 없는 자리로 알려졌다. 

차장은 직제상 기획조정관, 전산정보관리관, 감사관, 납세자보호관, 국제조세관리관을 밑에 둔다. 국제조세관리관을 제외하면, 예산과 내부운영 등 주로 안살림에 해당하는 영역이다. 속된 말로 열심히 일해도 티는 안 나는 일들이다.

또한 국세청 차장은 각종 국세 사무 관련 각종 위원장을 맡아야 하며 청장을 대리해 외부행사에도 나가야 한다. 어느 고위직이나 그렇지만, 특히 차장은 개인적 삶이 없다는 의견이 많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국세청 차장의 위상은 약했다. 2009년 7월 차장 취임한 이현동 전 국세청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차장직을 마지막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이러한 차장이라도 ‘실세’였던 적은 있었다. 김영삼 정부에서 임채주 차장은 국세청장에 올랐고, 김대중 정부에선 안정남 차장, 노무현 정부에서 이주성, 전군표, 한상률 차장은 전원 국세청장에 오르며 2인자로서의 명성을 떨쳤다.

그런 만큼 새정부 들어 능력 중심의 공정인사기조가 새로 수립되면서 국세청 차장이 국세청장승진으로 가는 가교가 될 수 있다는 견해가 나온다. 

다만, 국세청장이 되려면 조사 업무에 능통해야 한다.

국민의 정부 이후 국세청장으로 승진한 역대 차장 중 전군표, 한상률, 이현동 차장은 국세청 조사국장을 역임한 ‘조사통’이었고, 이주성 차장은 국세청 조사국장을 역임하진 못했지만, 중부청 조사1국장, 서울청 조사2국장 등 주요 조사업무를 지휘 해본 바 있으며, 부산국세청장과 기획관리관을 거치면서 다재다능함을 입증했다.

현재 서대원 차장은 서기관 임용 이후 조사경력이 과장으로 약 2년, 국장으로 1년 정도다. 

한 국세청 관계자는 “이제 막 국세청장 및 1급 진용이 갖춰진 만큼 차기를 논하는 건 이르다”라면서도 “새정부가 국세행정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를 무엇으로 판단하느냐에 따라 국세청장 발탁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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