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비양심적인 법무사와 채권 중개상들이 부동산 구입자에게 할인율을 바가지 씌워 부당 이익을 챙기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이 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위탁수수료를 조금이라도 더 챙기기 위해 불법적인 행태를 묵인하고 있어 애꿎은 국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은행, ‘채권 쪼개기’ 통해 나랏돈 편취…“국민 혈세로 실적 올리는 것”
국민주택채권은 정부가 주택도시기금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발행하는 5년 만기 채권으로 국채의 일종이다. 주택·토지 등의 부동산 매입 시 구입자들은 의무적으로 부동산 가격(시가 표준액 기준)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만큼의 국민주택채권을 사야만 한다.
국민주택채권은 대표적인 강제성 채권인데, 강제성 채권의 경우 만기까지 보유하면 원금에 이자까지 받을 수 있지만 실익(5년 만기에 금리 연 1.75%)이 적어 구입자 거의 대다수가 보유하기보다는 매입과 동시에 매도해 등기비용 부담을 줄이는 쪽을 선택한다.
국민주택채권 발행은 한국예탁결제원에서 맡고 있지만 발행업무는 신한·KB국민·KEB하나·우리·NH농협·IBK기업은행 등 시중은행 6곳이 정부로부터 위탁수수료를 받고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조세금융신문 취재 결과 6개 시중은행 중 몇몇 은행이 국민주택채권 발행을 채권 중개상에게 위임시키고 중간에서 실속을 챙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질적인 발행업무는 하지 않은 채 위탁수수료에서 채권중개상에 주는 수고비를 뺀 차익으로 주머니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들 은행들은 쪼개기 수법을 통해서도 이득을 취하고 있다. 은행 측으로부터 채권 발행 업무를 넘겨받은 일부 법무사들이 1개의 채권을 여러 개로 쪼개서 발행해 다시 은행에 넘겨주는 편법을 통해서다.
국토부에서는 국민주택채권 발행 건당 3140원씩 위탁수수료를 지급하고 있는데, 일부 은행이 법무사와 결탁해 채권 발행 건수를 늘려 신고함으로써 나랏돈을 더 많이 받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몇몇 몰지각한 은행들이 국민 혈세로 실적을 올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비양심적인 법무사·채권중개상, 할인율 부풀려 부동산 구입자에게 ‘바가지’ 씌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법무사들과 채권중개상이 짜고 나라에서 정한 것보다 훨씬 높은 할인율(고객부담율)을 적용해 부동산 구입자들을 대상으로 바가지 장사를 하는 있다는 점이다.
통상 국민주택채권 매입에 들어가는 비용은 수백에서 수천 만원에 달한다. 이에 반해 금리(연 1.75%)는 근원 물가상승률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어서 부동산 등기를 대리하는 법무사들은 일반적으로 부동산 구매자에게 몇 십 만원의 손해를 보더라도 할인해서 즉시 파는 것이 낫다고 권유한다. 이 과정에서 국민주택채권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구매자를 상대로 할인율을 부풀려 이익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 채권 중개상이 국민주택채권 업무를 대행하면서 은행이나 법무사로부터 받은 고객의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유통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민주택채권, 모집인 관련 규정 없어…은행들 간 실적 경쟁의 피해는 소비자의 몫
일각에서는 국민주택채권의 경우 모객행위를 할 수 있는 모집인에 대한 규정이 없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한다. 대출모집인, 보험설계사, 카드모집인 등은 관련법이나 규정에 따라 운영되는데 반해 국민주택채권 모집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채권업자가 고객들을 상대로 모객행위를 하게 된 것도 이런 이유다.
이와 관련 은행권 한 관계자는 “세금 성격인 국민주택채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은행들 간 실적 경쟁에 법무사, 채권 중개업자들이 끼어들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형 채권중개업체에 접속해보면 ‘국민주택채권 시행 세칙’ 등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만드는 매뉴얼 등을 버젓이 올려두고 장사를 하고 있다”며 “채권상들의 이러한 불법적인 행태는 결국 실적에 혈안이 된 은행들이 그 단초를 제공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주택도시기금을 담당하는 국토교통부는 조만간 ‘주택도시기금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법령안’ 입법예고할 예정이다. 국민주택채권 매입대상(등기·등록·면허·허가·계약) 1건에 대해 2건 이상의 채권을 발행·해약·상환하더라도 그에 따른 위탁수수료는 각각 1건으로 산정토록 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국토부 관계자는 “채권을 발행할 때 실수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은행권 한 관계자는 “국민주택채권의 부작용 차단에 나선 국토부처럼 은행들도 시장 질서를 정화하기 위한 선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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