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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대 기업 평균연봉 7400만원…1위 여천NCC 1억1990만원


국내 500대 기업 직원의 작년 평균 연봉은 전년보다 2.0% 늘어난 7400만 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기업 중 평균 연봉이 1억 원을 넘은 곳은 12곳이었고, 이중 절반은 석유화학 업체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대표 박주근)는 500대 기업 중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기업 334개의 직원 연봉을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26일 밝혔다.


평균 연봉 1위 업체는 1억1990만 원의 여천NCC였다. 이어 한화토탈(1억1500만 원), GS칼텍스(1억1310만 원), 대한유화(1억1200만 원) 순이다. 여기에 6위 에쓰오일(1억1080만 원), 11위 SK이노베이션(1억100만 원)까지 포함, 석유화학 업체 6곳이 억대 연봉 기업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코리안리(1억1100만 원), 신한금융지주(1억1000만 원), 삼성전자(1억700만 원), SK텔레콤(1억200만 원), 교보증권(1억120만 원), NH투자증권(1억100만 원) 등 각 업종 대표기업들도 억대 연봉을 기록했다.


이어 메리츠종금증권(9940만 원), 신한금융투자(9900만 원), 롯데케미칼(9800만 원), SK하이닉스(9620만 원), 신한카드(9600만 원), 기아자동차(9600만 원), 삼성카드(9500만 원), 현대자동차(9400만 원) 등이 '톱 20위권'을 형성했다.


전년 대비 인상률이 가장 높은 곳은 대유에이텍으로 무려 36.8%에 달했고, SK이노베이션(32.9%)도 30% 이상 늘었다.


이밖에 동원산업(27.3%), KH바텍(26.7%), 현대해상(24.3%), 폴라리스쉬핑(23.4%), 롯데케미칼(22.5%), 동두천드림파워(22.2%) 등이 20%대 인상률을 기록했다.


업종별로는 증권업종이 8920만 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IT전기전자(8790만 원), 자동차·부품(8710만 원), 여신금융(8280만 원), 유화(8080만 원), 은행(8060만 원) 등의 순이었다.


반면에 유통업종은 3740만 원으로 가장 적었고, 식음료(5070만 원), 생활용품(5330만 원), 제약(5810만 원), 서비스(5860만 원) 업종 등도 5천만 원대로 비교적 낮은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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