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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최순실 사위 용돈 지원…특검 법정서 증거 공개

허위 운영비 타기 위해 사위 신씨 말 관리사 등록


(조세금융신문=김필주 기자) ‘최순실 게이트’ 주인공인 최순실씨가 독일에서 운영하던 ‘코어스포츠’ 측이 삼성으로부터 지원비를 타내기 위해 최씨 사위도 직원으로 포함하는 등 허위 운영비를 산정한 일부 정황들이 법정에서 공개됐다.


13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2차 공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최씨 딸 정유라씨에 대한 삼성의 승마 지원 부분 등의 내용이 포함된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의 진술조서를 증거로 제시했다.


특검은 황 전 전무에 대한 조서내용 중 검찰 조서내용을 근거로 특검이 노승일 전 코어스포츠 부장과 질의응답이 이뤄진 대목을 증거로 삼았다.


당시 노씨는 검찰에서 코어스포츠 부장 재직 중일 때 일을 진술하며 “코치 1명, 트레이너와 매니저는 아예 없었다. 말 관리사는 최씨 딸 정유라씨 남편인 신주평씨 등 4명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이어 노씨는 “신씨는 정씨의 사실혼 배우자이면서 최씨의 사위로 정씨가 키우는 개 11마리, 고양이 3마리를 돌봤을 뿐이다”며 “말 관리를 해본적도 한 적도 없는데 최씨 지시로 용돈을 챙겨주기 위해 말 관리사에 포함시켰다”고 설명했다.


신씨 친구인 김 모씨도 독일에 거주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조서에 따르면 노씨는 “김 모씨 또한 말 관리를 할 줄 모르고 말의 배설물 처리만 거들었을 뿐”이라며 발언했다.


노씨의 진술을 토대로 특검이 황 전 전무에게 코어스포츠의 허위 정산내역을 질문했으나 황 전 전무는 “잘 몰랐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은 정씨에 대한 승마 지원도 최씨의 영향력과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인해 쉽게 중단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정씨 승마지원 문제가 수면위에 드러나자 삼성은 작년 코어스포츠 지원을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최씨에 통보했으나 최씨가 오히려 추가지원을 요구해 다시 이를 검토한 것으로 밝혀졌다.


조서에 따르면 황 전 전무는 특검 조사 당시 “2016년 9월 하순경까지는 박 전 대통령도 건재해 있어 단호하게 끊지는 못했던 것 같다”며 “함부르크 프로젝트 담당자로서 최씨에게 끌려가면서 원하는데로 다 해줄 수밖에 없었고, 확인해야 할 사항도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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