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국가직 공무원 A씨는 5세 자녀를 둔 맞벌이 가장이다. 그는 정부가 금요일 퇴근시간을 두 시간 앞당기는 대신 4일간 평일 퇴근시간을 30분씩 늘린다는 소식에 어린이집에서 사정을 봐줄지 걱정이다.
지방직 공무원 B씨는 민원인들이 금요일 조기퇴근을 수용할지가 의문이다. 상황에 따라선 금요일 저녁 늦게 업무가 밀려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가계 소비 촉진 차원에서 추진한 한국판 프리미엄 프라이데이에 대해 전시성 행정이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쉴 틈도, 쓸 돈도 없다는 것이 공무원들의 말인데, 사전 의견 청취도 없이 상부에서 결정한 탁상공론이란 이유에서다.
지난 3일 인사혁신처는 공무원에 대해 앞으로 매월 하루 퇴근시간을 4시로 앞당기는 내용 등의 근무혁신지침을 각 부처에 시달하고, 단계적 시행에 나선다고 밝혔다. 4월 동안 기획재정부·인사혁신처·법제처·기상청이 선제적으로 시행하고, 5월부터 전 부처에 점진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공무원 조기퇴근제도는 지난 2월 황교안 권한대행 주재로 열린 ‘내수활성화 관계장관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으로 내수진작을 위해 직장인들에게 소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예컨대 월~목요일 등 평일에 30분씩 초과근무를 하고, 금요일에 두 시간 퇴근시간을 앞당기는 식이다.
이에 대해 공무원 사회 일각에선 불편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쉴 시간도, 쓸 돈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국가직 공무원 C씨는 “일에 밀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상황에 쉴 틈이 있겠느냐”며 성토했다.
지방직 공무원 D씨도 “예를 들어 건축 관련 민원의 경우 창구에서 안건을 접수하면, 실무 건축과에서 이를 처리하고, 처리한 안건을 민원인에게 전달해 세무업무 후 은행에 가서 금융까지 처리해야 완전히 종료된다”며 “이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업무가 전혀 처리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어린 자녀를 두고 있는 맞벌이 가정들도 복잡한 심경이다. 격무부서에 속한 공무원의 경우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와 일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어린이집에서 추가 비용을 요구하거나 더 봐줄 수 없다고 하는 경우 부담은 고스란히 개인의 몫이 된다.
이에 대해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각 부서 업무 특성에 맞춰 자유로이 일정을 짜면 된다”며 “지침을 전달할 때 이런 점을 충분히 고려할 것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일부 공무원들은 부서 사정 고려없이 반 강제적으로 운영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중앙에서 이행실적을 보고받아 기관장들을 압박할 공산이 높다는 것이다. 지적을 받은 기관장들은 인사불이익을 통해 개인을 압박할 수밖에 없다.
인사혁신처 측은 “각 부처로부터 이행 결과를 보고를 받는 것은 맞다”라면서도 실적압박 등에 대해선 “지금 단계에선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전했다.
반대 여론이 쟁쟁한 가운데 전국공무원노조 측에서도 모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박중배 전국공무원노조 사무처장은 “조기퇴근제도는 공적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민간경제주체의 업무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OECD 기준 공공서비스 대비 공무원 수가 가장 적고, 비정규직 공무원 수는 가장 많은 기형적 형태”라며 “만성적 업무과다로 가진 연차조차 제대로 못 쓰고, 비정규직 양산으로 저소득층을 늘어나는 상황에서 퇴근시간을 앞당기면 소비가 늘어난다는 발상은 그 자체로 자가당착적 모순이 있다”고 비판했다.
박 사무처장은 “소비를 늘리는 유일한 방법은 업무량에 맞춰 인원을 늘리고, 비정규직을 줄여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라며 “무작정 퇴근해서 돈 쓰라는 제도가 개인의 삶과 국내 소비에 얼마나 기여할 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그 부분은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가 답할 문제”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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