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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주말인 11월 8일과 9일. 강 부총리와 김 수석은 내내 머리를 맞댔다. 별다른 방안이 없었다. 11월 10일 이들은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금융개혁법안과 IMF 지원요청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겠습니다.” 김 대통령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나 표정에 변화는 없었다. 이날 하오 9시 30분 김 대통령은 이 한은 총재 집으로 직접 전화를 걸었다. 외환 사정을 꼬치꼬치 물었다.


11월 13일 밤. 빅 3는 라마다르네상스호텔에서 머리를 맞댔다. 보안을 지키기 위해 각자 저녁식사를 하고 모였다. 이 자리에서 ‘IMF로 갈 수 밖에 없다’는 정부의 방침을 최종 확정했다. 다음날 14일 아침 이들은 청와대에서 ‘금융시장안정대책’을 보고하면서 정식 재가를 받았다. 김 대통령은 “나의 임기 중에 꼭 가야만 하느냐”라며 말끝을 흐렸다.


11월 14일 상오 10시 국회 재경위회의실. IMF 구제금융신청건에 대해 김대통령의 정식재가를 받은 강 부총리
는 복도에 늘어선 한은 관계자들을 비집고 간신히 자리에 앉았다. 금개법안 반대파인 국민회의와 자민련의원은 13명 중 10명, 찬성 쪽인 신한국당 민주당 의원은 16명 중 7명이 참석했다. 표결 처리할 예정이었으나 수가 부족했다.


강 부총리는 재경원 간부들에게 여당 의원들의 소재파악을 지시했다. 전날 강 부총리는 “이번에 통과되지 못하면 사표 쓸 각오를 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재경원 직원들은 전화통에 매달렸다. 같은 시각, 한은 본점의 1층로비는 법안통과 저지열기로 가득했다. 낮 12시 증권·보험감독원 노조와 함께 ‘한은법 개악 및 금융감독원 설립 원천 무효를 위한 규탄대회’가 열렸다. 관련법률안 재경위 통과시 총파업 돌입을 결의했다.


한국경제가 환란에 침몰하고 있던 그 며칠간, 재경원은 전화 등으로 의원들을 설득하기 바빴고, 한은은 의원 집앞, 신한국당과 국민회의 당사, 국회의사당, 거리에서 법안통과저지를 호소하며 쏘다녔다. 외환대책마련이 급한데도. 금융개혁법안은 결국 IMF 권고에 넣어 통과됐다. 만일 법안이 11월에 통과됐다면 IMF 구제금융은 피할 수 있었을까.


강 부총리의 회고. “IMF에 가는 것은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미 IMF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처럼 어려움에 빠지지는 않았겠지만.” 강 부총리는 11월 10일 마련한 금융시장안정대책을 법안통과에 연계시켰다가 9일이 지나서야 발표했다. 마지막까지 때를 놓친 것이다.


11월 16일 미셀 캉드쉬 IMF총재가 당초예정을 바꿔 극비 방한했다. 일요일인 탓인지 하오 5시의 김포공항 2청사 입국장은 평소보다 붐볐다. “걱정 마십시오(Don’t worry). 한국인들에게는 모든 외국인이 똑같이 보입니다.” 재경원 김우석(金宇錫) 국장과 최중경(崔重卿) 과장은 남이 눈에 뜨일까 염려하는 캉드쉬 총재와 휴버트 나이스 IMF아·태국장을 안심시켰다.


관용차 대신 렌터한 다이너스티를 타고 올림픽 대로를 달려 도착한 곳은 인터콘티넨탈호텔 스위트룸. 하오 6시 30분 강경식 부총리, 이경식 한은 총재, 재경원 엄락용(嚴洛鎔) 2차관보, 윤증현(尹增鉉) 금융정책실장이 들어왔다. 서로 인사말이 끝나자 강 부총리가 환율, 외채 만기연장률 등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가며 급박한 금융시장 동향을 설명했다. “IMF의 지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11월 19일에 공식 신청하게 될 겁니다.” 시계가 벌써 밤 10시를 넘고 있었다.


긴장된 침묵이 흐른 뒤 캉드쉬 총재가 굳은 표정을 풀며 입을 열었다. “최대한 지원하겠습니다.” 그는 이튿날 아침 은밀히 워싱턴으로 떠났다.


재경원 모국장의 회고. “강 부총리 팀의 기본 전략은 투 톱 시스템이었다. 금융개혁법안이 통과되고 금융시장안정 대책을 발표하면, IMF가 한국의 개혁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필요하다면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힌다. 그러면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치권은 너무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였다. 이날 아침 3당 총무들은 결론을 못 내렸고, 은행·증권·보험 감독원 노조협의회는 상오 11시 기자회견을 통해 “한은법 및 감독기관통합법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11월 17일 상황은 더욱 꼬여갔다. 상오 11시 국회 재경위가 속개됐으나 무결론, 3당 총무와 만난 강 부총리는 “금융개혁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사표를 내겠다”고 강경하게 맞섰다. 그러나 야당은 회의에 불참했고 신한국당도 노동법 파동을 의식, 단독처리하지 않겠다고 발을 뺐다. 밤 11시 15분까지 하루종일 국회에 묶여있던 강 부총리는 ‘예금자보호법 등 4건 선별처리’에 만족했다. 금융개혁법안은 사실상 무산됐다.


달러환율은 하오 2시10분 제한 폭(1,008원60전)까지 치솟은 뒤 거래가 중단됐다. “재경원이 금융개혁법안을 담보로 실력행사를 벌인다”는 소문이 나돌았으나 사실은 외환보유고가 부족해 역부족이었다. 종합지가지수는 전날보다 22.39포인트 빠져 500선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한은 직원 600여명은 낮 12시부터 2시간 45분 동안 신한국당사 앞에서 금융개혁법안을 반대하는 항의집회를
벌였다. 11월 18일 상오 9시 30분. 외환시장 개장을 알리는 벨이 울리자마자 환율은 하루변동제한폭인 달러당 1,012원 80전까지 오른 뒤 1분만에 거래가 중단됐다.


조금 뒤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국무회의실. 막 자리를 뜨려는 장관들을 오인환(吳隣煥) 공보처장관이 붙들었다. “지금은 일종의 국난상태다. 당면한 위기를 국무위원들도 알아야 한다. 외환위기가 심각한 것 같은데 강 부총리는 어떻소.”


“우리 경제의 기초는 아직 튼튼한 편이다. 이번 위기는 심각하다. 금융개혁법이 국회를 통과할 줄 알았는데...
너무 힘들다. 재벌들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간담회는 25분간 ‘침통’과 ‘한숨’으로 이어졌을 뿐 대처 방안이나 합의는 없었다.


하오 8시. 국회 폐회로 금융개혁법안은 무산 마지막보루가 무너졌다. 강 부총리는 금융정책실 국·과장들을 불러모았다. 거대한 그물에 걸린 것 같다.” 침묵이 흘렀다. “내일 대책을 발표한다.”


11월 19일 상오 8시 청와대 본관 집무실. 강 부총리와 김인호 경제수석은 실무자들이 새벽까지 다듬은 금융시
장안정대책을 김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IMF구제금융신청건도 포함돼 있었다. 김 대통령은 묵묵히 듣고 있다 그들이 나가자 김용태(金瑢泰)비서실장을 불렀다. “좀 쉬라고 하제.” 강경식 부총리를 퇴진시키고 임창렬(林昌烈)을 부총리로 기용한다는 뜻이다. 이로써 7번째 경제 팀의 등장했다.


하오 3시 30분 과천정부종합청사 1동 7층 부총리집무실. 막 임명장을 받고 돌아온 임창렬 부총리는 경제장관
들과의 간담회를 소집한다. 그는 곧 발표할 대책을 짤막하게 설명했으나 IMF건은 언급조차 안 했다.


하오 5시 15분. 회견장에서 발표문을 다 읽은 임 부총리에게 IMF행 여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현재 한국경제는 IMF의 도움 없이도 국제금융계가 협조만 해준다면 위기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 “그 동안 한국은 이자를 꼬박꼬박 갚은 우량고객이자. 신뢰할 만한 정책을 내놓으면 여건이 나아지리라고 본다.”


임 부총리는 역시 단호했다. 임 부총리는 그후 “취임한 날(19일) 받은 발표문에는 IMF문제는 없었다. 내가 고친 것은 환율변동폭을 15%에서 10%로 손질한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11월 19일 발표내용에서 IMF건을 제외시킨 사람은 누구였을까. 대통령이었을까 아니면 강 부총리였을까, 그리고 왜 그랬을까. 그는 이날 밤 일본 미쓰즈카 히로시(三塚博) 대장성장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협조를 요청했다. 그사이 IMF와 미국 등은 “한국정부의 약속파기냐”며 비상이 걸렸다.


11월 20일 환율변동폭이 4배나 확대되었는데도 외환시장은 연4일째 거래가 중단됐다. 11월 19일 대책에 대한 외국의 반응은 차가웠다. 역부족이었다. 미국 정부는 ‘재무성을 중심으로 한국 상황을 예의 주시 중’이라는 논평을 낸 뒤 곧바로 마닐라회의에 참석 중인 티모시 가이드너 재무성 차관보와 테드 트루먼 FRB 국장을 서울로 급파했다. IMF의 2인자 스텐리 피셔 부총재도 이날 하오 같은 비행기로 전격 방한한다. 한국의 대외 신인도는 걷잡을 수 없이 추락했다.


그러나 정부는 나라 밖의 긴박한 움직임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다. 임 부총리는 가이드너 차관보의 면담 요청에 빡빡한 일정을 이유로 난색을 표명하다 그가 로버트 루빈 재무성 장관의 ‘특사’라는 점이 밝혀지자 하오 6시께 급히 만났다.


같은 시각 비상대책자문위원회 위원인 박영철(朴英哲) 금융연구원장은 힐튼호텔 1911호실에서 피셔 부총재를 만났다. 1시간 30분 뒤 롯데호텔에서는 피셔 부총재는 임 부총리와 자리를 함께 했다. IMF 구제금융 신청 발표는 초읽기에 들어갔다.


하오 9시 롯데호텔에서 이경식 한은 총재는 ‘임창렬-김영섭’팀과 회동하고, IMF행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이
경식 한은 총재는 후배격인 임창렬 부총리가 전경제팀과 합의했던 IMF행을 발표하지 않아 무척 당혹스러워 했다. 왜 임 부총리는 IMF행을 발표하지 않았을까. 1999년 1월 25일 제200회 국회 청문회에서 김칠환(金七煥) 위원은 이 문제를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당시 국가 경제 신인도에 관련된 문제라고 전제하면서.


김칠환 위원이, “이때 증인은 IMF행이 결정되었고 대통령의 재가까지 난 사항이라는 것을 정말 몰랐습니까.” 참고인 임창렬, “제가 알고서 제가 발표하는 식으로 발표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날 실질적으로 IMF로 가기로 한 대통령의 재가가 11월 14일에 났다는 것은 아시지요.” “그것은 협의를 해본다는 내용이고 지금 검찰이나 감사원 조사에 의하면 19일 구두재가가 아마 최초의 재가라고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임 부총리는 그때까지만 해도 IMF구제금융지원요청까지 가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11월 19일 금융시장안정대책을 발표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무역 규모로 세계 11위권에 드는 한국경제가 혼란해지면 미국 일본 등도 타격을 받을 것이므로 국제금융사회도 그들 국익을 위해 협조할 것”이라며 금융시장 안정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단기외화 차입방안이 이번 발표에는 없는데 당장 외화난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질문에,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외화 자금의 추가확보는 필요하다. 정부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하고 중앙은행간 협조융자를 얻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라고 했다. 그는 IMF에서 자금을 지원해 줄 때는 적정물가 등 각종 정책에 대해 간섭하게 된다. 현재 우리 나라의 정책지표 는 건실하므로 돈만 필요한 경우 국채 발행이나 중앙은행간 협력만으로 충분하다고 보았다. 그의 태도가 우리 나라 외환사정을 더 어렵게 만들지 않았는지.


11월 21일 상오 10시 청와대에서는 비상경제대책자문위원회 첫 회의에 참석한 위원들은 대부분 IMF자금 이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재경원 측은 마지막까지 ‘IMF 지원 요청 결정’이라는 언론보도에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하오 3시 30분 재경원 기자실에서 열린 임 부총리와의 간담회에서, “2~3일 안에 IMF자금지원 요청 여부를 결
정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하오 6시 정의동(鄭義東) 공보관에게 ‘밤10시 기자회견’을 준비하라고 지시하는 등
내용을 호도하고 있었다.


밤 10시 20분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임 부총리는 굳은 표정으로 발표문을 읽어 내려갔다. “외화차입의 곤란으로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사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IMF에 지원을 요청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기자회견은 TV 생방송으로 나갔다. “IMF가 지원하기로 한 이상 국제금융시장에서 우리의 단기자금을 회수하는 일이 줄어들 것입니다. 일본도 동참할 것이며, 미국도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10월말까지 225억달러에 달하던 가용외환보유고는 이날 130억달러에 불과했다. 펀더멘탈이 좋다고만 들었던 국민들은 ‘아닌 밤중에 홍도께’ 격이였다. 임 부총리의 말을 듣고 국민들은 잠시 위안을 받았다. 그러나 되돌아갈 수 없는 고통의 긴 터널에 진입했음을 안 것은 10여일이 지나서였다.


22일 상오 9시 재정경제원 금융협력관실에는 IMF로부터 수십 쪽의 자료요청서가 팩시밀리로 날아들었다. 통
화, 환율, 금융기관재무제표, 금융산업구조조정방안, 재정·거시경제지표 등. 같은 시간 워싱턴에서는 미셀 캉드쉬 IMF총재가 기자회견을 갖는다. “한국이 금융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충분한 자금을 지원해 주겠다.”


캉드쉬(Camdesus Michel.67), 그는 누구인가. 그는 프랑스 최고의 명문인 국립행정대학원(ENA)을 1960년에 졸업한 후 재무부에 들어갔다. 재무부에서 20년간 근무하며 요직을 두루 거쳤다. 1984년부터 3년간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후 1987년에 7대 IMF총재에 취임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통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그는 지금은 프랑스 최대 싱크탱크인 국제경제전망 및 정보연
구소(CEPII)회장직을 맡고 있다. 얼마 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정의와 평화를 위한 교황청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됐다.


2001년 2월 IMF총재직에서 물러난 그는 공식적으론 IMF를 떠났지만 파리 IMF사무소에 집무실을 두고 수시
로 출근, IMF 관련 업무를 보고 있다. 그는 13년간의 IMF총재 시절의 경험담을 담은 회고록을 조만간 출간할 예정이다. 1997년 한국 외환위기를 처리하며 한국에 대해 많이 알게됐고 또한 한국인의 위기극복 의지를 존경한다는 그는 회고록 내용 중에 한국관련 부분도 상당히 있을 것이라고.


[이국영 프로필]

• 효도실버신문 편집국장·시니어라이프 연구소 소장
• 전) 한국은행 은행감독원 은행검사역
• 전) 한국은행 사정과장과 심의실장
• 전) 월간 금융계 편집위원
• 저서 「금융기관 자점감사론(1994년)」,
「해방후 금융사고총관(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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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캠코 문창용 사장 "부실채권 인수·정리로 금융시장 충격 최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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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2017 조세공약(公約)과 공약(空約)
2017년 정유(丁酉)년의 새해가 밝았다. 작년 10월말부터 불거진 최순실 게이트는 그 이후 모든 정책 어젠다(agenda)를 한꺼번에 삼켜버렸다. 올해 1사분기도 복잡다단한 시기가 될 것은 분명하다. 상황에 따라 그 시기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올해 내에 대선(大選)이 이루어지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대선 캠페인 기간 중에는 수많은 공약(公約)이 난무한다. 공약 중에서 유권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경제와 관련한 공약이고 이중에서도 조세공약은 모든 유권자의 지대한 관심사다. 지나고 나면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어 유권자의 마음을 허무하게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공약은 유권자에게 후보자를 선택하는 가장 기본적인 판단기준이 된다. 조세문제는 직접적으로 납세자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는 것이어서 더더욱 유권자는 조세공약에 민감하며 조세공약에 따라 심하게 표심(票心)은 움직이기도 한다. 대부분 조세공약은 유권자에게는 둘 중의 하나로 다가온다. 조세공약이 현실화되면 나에게 세금을 더 부담시키게 될 것인가 아니면 세금을 줄여줄 것인가이다. 유권자 개개인에게는 정말 중요한 문제이다. 예를 들어보자. A후보자는 세금을 늘이지 않겠다고 하는 공약을 걸었고 B후보자는 세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