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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금융신문= 박일렬 강남대 교수) 현대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 중의 하나는 신용화폐의 탄생과 그 사용이 아주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용화폐란 신용(채무)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지는 돈을 말하는데 이 신용화폐의 급증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헨리 포드(1863~1947)는 “국민들이 은행과 통화체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주 다행스런 일이다. 그들이 그것을 이해하면 오늘 밤에 당장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은 은행이 뭔가 커다란 음모를 숨기고 국민들에게 알려주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들린다. 자본주의 체제는 일반 시중은행에서 해주는 대부나 민간 기업들이 발행하는 어음처럼 수많은 유형의 사적인 채권(채무 관계를 화폐로 둔갑시키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화폐를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화폐와 구분하기 위해 유사화폐라는 용어를 쓰기로 한다.


유사화폐는 신용을 화폐화한 것인데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화폐가 탄생하는 과정은 크게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맨 처음 단계로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발권하는 법정화폐(본원통화)가 있다. 이것은 모든 화폐의 기준이 된다.


두 번째 단계는 본원통화를 기반으로 해서 일반 시중 은행이 지불준비금 일부를 남기고 대출을 해 주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화폐가 있다. 일반적으로 예금통화라고 한다. 은행이 우리에게 발행해 주는 수표는 한국은행에서 탄생시킨 원조 화폐는 아니지만 돈처럼 똑같이 주고받으며 사용하니 돈이라 해도 상관없다.


세 번째는 민간인(주로 기업)이 탄생시키는 돈이다. 예를 들면 A라는 기업이 하청업체 B에게 일을 시키고 어음을 끊어주었다고 하자. 이 어음은 A가 B에게 사적인 채무관계를 지고 있다는 증표이다. 어음은 처음에는 단지 종이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은행에 가면 할인을 하고 돈으로 바꿀 수가 있고, 어음 자체가 직접 돈처럼 지불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하니 돈과 같은 역할을 한다. 따라서 어음은 신용(사적 채무관계)이 화폐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사적인 채무계약을 증거하는 수표, 카드, 채권, 약속어음, 상품권 등 수많은 유형의 증표들, 즉 유사화폐는 채무자가 이 증표를 가져오는 사람에게 그 증표에 기입한 금액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지불약속이다.


한국은행의 5만 원권은 정부가 5만 원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이고, 은행이 발행하는 10만 원권 수표는 은행이 그 금액만큼 책임지겠다는 지불약속이다. 마찬가지로 A기업이 발행한 어음이나 상품권 역시 그 기업이 책임지고 빚을 갚거나 물건과 교환해 주겠다는 지불 약속이다.


물론 이 채무에 대한 지불약속의 신뢰도에 따라 각기 다른 이자율이나 할인율이 적용된다. 수많은 유형의 유사화폐가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그 모든 화폐의 제왕은 법정화폐이다. 법정화폐도 일종의 지불약속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최고의 신뢰성을 바탕으로 힘을 갖게 되는 것은 국가가 세금으로 지불약속을 보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가가 화폐로 지정하였다고 모두 완전한 화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완전한 화폐가 되려면 충분조건이 더 갖추어져야 한다. 화폐에 생명을 불어넣는 충분조건은 바로 국민의 신뢰이다. 이것이 왜 중요한지는 앞서 역사에 나타난 사례에서 충분히 볼 수 있었다.


공평과세가 되기 위하여

사적인 채무를 나타내는 유사화폐는 그 형태가 어떤것이든 최종적으로는 그것이 국가가 찍어낸 법정 화폐로 교환될 수 있다는 것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것이 보장되면 그 사적 채무도 화폐의 위치에 오르면서 다른 물품과 교환되고 가치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사적채무가 법정화폐와 교환되는 과정에는 중앙은행이 참여하게 된다. 중앙은행은 여러 형태의 유사화폐들을 받아들이고 법정화폐를 내어준다. 즉 채무를 매입하고 화폐로 교환해주는 과정을 통해 사적채무들을 화폐로 탈바꿈시키고 통화량을 증가시킨다.


이렇게 늘어난 통화량은 정부가 통제하는 통화량지표에는 빠져있게 된다. M1, M2라는 통화량지표는 금융권이 만들어내는 유사화폐만 들어있고 민간부문이 창출하는 것은 빠져있다. 민간부문이 만들어내는 유사화폐는 아예 화폐로 쳐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부분의 규모가 월등히 크다.


한편, 신용이 화폐화될 때에는 유사화폐들의 서열이 정해진다. 왕 가까이에 높은 대신이 도열하는 것처럼 법정화폐에 가까울수록 서열이 높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유동성이란 용어는 얼마나 빨리 현금화할 수 있는가의 의미인데, 수표처럼 유동성이 큰 유사화폐는 그만큼 법정화폐에 가깝다는 뜻이다.


서열이 높은 유사화폐를 만들 수 있는 기관은 경제생태계에서의 위치도 그만큼 높다. 그래서 수표를 발행할 수 있는 은행권은 경제계의 최강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유사화폐를 창출할 수 있는 대기업도 강자이다.


반면에 중소기업은 화폐를 거의 만들지 못하는 약자이다. 화폐는 경제적 지배력을 반영한다. 화폐를 만들 수 있으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고 했다. 유사화폐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적인 지배력이 강하다는 의미이다. 공평과세는 담세력, 즉 경제력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담세력을 측정할 때는 법정화폐를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만을 본다. 담세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돈을 만들 수 있는 힘’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돈’은 과표에서 빠져있다.


금융완화 정책 효과의 한계

그동안 정부가 경기조절을 위해 내놓은 정책들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민간 부문이 창출하는 화폐를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기가 호황일 때는 기업들이 금융권에서 빌리는 돈 말고도 사적인 채무계약이 많이 맺어지면서 유사화폐도 급증한다. 반면에 불황일 때는 신용이 급격히 축소된다.


정부가 유동성을 공급해도 민간부문에서 유사화폐가 사라지면 그 효과가 제대로 나타날 수 없다. 현재 세계 경제상황이 그렇다. 세계 각국이 무한정으로 돈풀기를 계속하지만 실물경제가 오히려 디플레이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민간기업과 가계부문에서 신용이 축소되는 규모가 정부의 유동성 공급 규모보다 더 크고 빠르기 때문이다.


실물경제는 사업에 대한 비전이 있을 때 움직인다. 사업 비전도 없는데 금리가 낮다고해서 돈을 빌려다 투자를 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돈풀기를 계속하면 그 돈은 금융권으로 되돌아오든가 아니면 부동자금이 되어 떠돌 뿐이다. 유사화폐의 위계질서는 굉장히 엄격하다. 그렇지 않으면 화폐 체계가 붕괴되기 때문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유사화폐의 창출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지, 아래에서 위로는 가지 못한다.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게 자신이 창조한 화폐로 결제를 할 수 없고, 기업이 자신이 만든 유사화폐로 일반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을 수 없다.


그렇지만 극약처방이 필요한 아주 특별한 경우에는 예외가 있을 수 있다. 최근 미국과 유럽의 중앙은행에서 양적완화로 회사채를 인수한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있다. 회사채는 민간이 발행한 것으로 극히 사적인 채무관계인데, 이것을 중앙은행이 법정화폐를 발권하여 교환해준다는 것은 일반 채무화폐를 법정화폐로 인정한다는 의미이므로 혁명 수준의 대단한 특례인 것이다.


모든 채무의 보증인은 국민!

그런데 사적채무가 화폐가 되기 위해서는 납세자의 보증이 필요하다. 화폐의 본질이 지불약속(채무)이므로 그것이 세금으로 보증되지 못하면 화폐의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즉 법정화폐이든 유사화폐이든 궁극적으로 책임을 지는 자는 세금을 내는 납세자이다.


국가가 발행한 국채에 대한 지급보증은 국민의 세금이기 때문에 납세자는 원치 않는 채무자가 된다. 또한 납세자는 사적채무인 유사화폐에 대해서도 궁극적으로는 보증을 서주고 있는 셈이다. 보증인은 여차하면 보증 책임을 져야한다. 그래서 현재 자신이 빚이 없다고 안심할 일이 절대 아니다.


국민의 뜻과는 상관없이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는 순간 국민은 그 채무를 갚아주어야 하고,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이 사적인 채무관계를 맺고 그것을 화폐화하면 국민은 자동으로 그 채무계약의 보증인이 되기 때문이다.


은행이 도산하고 기업이 부실해지면 국민이 세금으로 그 보증 책임을 졌던 경우가 어디 한 두 번이던가? 더 걱정스러운 점은 앞으로 신용화폐의 종류와 규모가 더욱 팽창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사이버머니 같은 인터넷 기반의 새로운 지불시스템도 등장했다.


이것이 기존의 법정화폐와 같은 권위를 가지게 될지, 새로운 유사화폐에 머물지는 아직 예단할 수 없지만 앞으로는 이러한 화폐가 급성장함으로써 새로운 경제생태계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수많은 금융권과 기업들은 새로운 채무관계를 끊임없이 확대시킬 것이고 그에 따라 그들이 만들어내는 유사화폐 또한 급증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만큼 화폐를 창조할 수 있는 자들의 경제 권력은 확대될 것이고, 세상이 돈으로 넘쳐나도 그들의 채무보증 서기에 바쁜 힘없는 일반 국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억울하기 짝이 없지만 이것은 21세기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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