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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군자는 말은 어눌하지만 성실하게 실행하고자 한다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子曰; “古者言之不出, 恥躬之不逮也.”

자왈; “고자언지불출, 치궁지불체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은 것은 자신이 미치지 못할 것을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 이인里仁 4.22

 

앞서 위정편(2.13)에서 공자는 자공에게 ‘말보다 실천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것은 자공이 화려한 언변으로 상대방을 속이거나, 행동보다 말이 앞설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자공도 스승의 말을 따르려고 했지만, 나라의 명운이 걸린 외교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는 상인이면서 정치와 외교도 담당했기 때문에 마냥 침묵을 지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말을 가벼이 하지 않는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 해답을 공자가 제자 자장(이름: 전손 사)에게 한 말에서 찾아보시죠. 자장(子張, 기원전 503년~)은 처음에 출세에 관심을 갖고 학문을 시작했다가 점차 사물의 이치와 도리를 깨달으면서 깊이를 더하게 됩니다. 그는 나중에 자신만의 학파(자장파)를 만들 정도로 크게 성장합니다. 공자는 관직을 구하려는 자장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위정 2.18).

 

“많이 듣고서 의심나는 것은 말하지 말며, 그 나머지는 신중하게 말해라.(중략) 말하는 데 과실이 적고 행동에 후회가 적으면 관직과 봉록은 자연히 얻게 된다.”

 

즉, 말을 할 때 신중하고,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실행을 안 하고, 아는 척하다가 오히려 후회할 수 있습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이야기하거나, 가만히 있는 편이 낫습니다. 그것이 말을 가볍게 하지 말라는 주된 의미입니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뒤에 이야기할 ‘경청’입니다. ‘신중’과 ‘경청’은 나의 말에 무게를 더해줍니다.

 

말이 어눌하더라도 실행력이 좋다는 것

 

사실 공자가 높이 평가하는 제자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말은 다소 어눌하더라도 실행력이 좋은 제자들입니다. 안연, 중궁, 증자 등이 대표적입니다. 공자는 〈이인편〉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군자는 말은 어눌하지만 성실하게 실행하고자 한다.” - 이인(4.24)

 

누군가 중궁(이름: 염옹)이 비록 인덕(仁德)하지만, 말재주가 없다고 공자에게 이야기했을 때입니다(공야장 5.4). 하지만 공자는 반드시 말재주가 필요하냐고 오히려 질문했습니다. 그는 말이 많고 행동이 따르지 않는 사람을 제일 싫어했던 것입니다.

 

사실 《논어》에서 사사건건 혼나던 염유보다 더 찍힌 제자가 있습니다. 바로 ‘3년 상’ 이슈로 공자와 한 번 붙었던 재아입니다. 심지어 공자는 “재아는 부모로부터 3년 동안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닌가?”라고 탄식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제자 중에서 가장 실리적이라고 평가를 받지만, 《논어》에서는 거의 망나니 제자로 묘사됩니다. 오죽하면 재아 때문에 더 이상 사람의 말(추천)을 믿지 않고, 직접 그 행실을 봐야 믿는다고 말했을까요?

 

“처음에 나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그의 말을 듣고 그의 행동이 어떨 것이라고 믿었었다. 하지만 요즘 나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 사람의 말을 듣고 나서도 그 행동을 자세히 살펴본다. 재아 때문에 이렇게 고친 것이다.”

 

반면 그는 말이 어눌한 중궁을 ‘임금감’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극찬했습니다. 제자 중에서 이런 칭찬을 들은 이는 중궁밖에 없습니다.

 

결국 ‘말’이 문제입니다. 예전에 한창 화제가 되었던 일입니다. 일부 유튜버들의 거짓에 속은 구독자가 분노하고 화를 냈습니다. 다른 유튜버들이 문제의 유튜버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했습니다. 그야말로 혀와 혀의 ‘설전’이었습니다. 이렇게 말은 무섭습니다. 말을 잘못하고 가볍게 여긴다면 그 결과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진 것일까요? 그것은 ‘말’을 파는 직업을 가진 사람, 그리고 그 ‘말’을 들으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해소하는 소비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방송에서 들을 수 없는 자극적인 표현과 설정에 일종의 해방과 자유를 느끼게 됩니다.

 

인간으로서 이러한 유혹을 피하기는 힘듭니다. 나의 세치 혀로 한 달에 몇 백, 몇 천만원의 수입을 올리게 되니 이만큼 수지 좋은 장사가 어디 있을까요? 물론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인기 유튜버가 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와 사전 스크립트도 필요합니다. 계획된 콘티에 따라서 움직여야 그만큼 더 많은 시청자들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말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말에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말’로서 돈을 벌고, 또 누군가는 ‘말’로서 망합니다. 화려한 언어 기술로 주의를 끌어서 성공한 사람도 결국 그 말에 진실성이 없다면 사람들은 금방 외면합니다. 막상 그 사람의 말을 들을 때는 그 기술에 현혹되어서 잘 모르고 있다가 뒤돌아서 생각하면 왠지 찜찜한 마음이 듭니다. 속았다는 기분이 듭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면 진실한 말이 아닙니다. 내가 지키지도 못할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과묵하다’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국어사전으로는 “말이 적고 침착하다”는 의미입니다. 예전에는 과묵하다는 것이 곧 듬직하다는 의미도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묵한 사람들을 좀 더 신뢰하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영상매체가 발전할수록 이런 사람들이 별로 각광을 받지 못합니다. 오히려 답답하거나 지루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제는 신뢰를 주는 말 한 마디보다는 ‘무지개’처럼 현란한 말재주를 갖고 있는 사람이 주목을 받습니다.

 

언변이 좋은 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경청’입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고 경청하면서 필요할 때 적기 적시에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필요할 때는 나의 의견을 확실히 밝힙니다. 가벼운 말보다는 묵직한 말을 날려야 합니다. 그것은 즉흥적으로 지어낸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사상이 고스란히 드러난 말이어야 합니다. 공기처럼 가벼운 말은 그냥 날아서 흩어져 버립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 말을 해야 합니다. 

 

천하의 공자도 안연을 오해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하루종일 안연을 가르쳤지만 아무 말이 없어서 그가 어리석다고 생각했습니다(위정 2.9). 하지만 안연이 다른 제자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우연히 듣고 공자의 가르침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실행력)을 보았습니다.

 

공자는 안연의 경청과 습득, 실행 능력에 감복했습니다. 아마 이때부터 공자의 ‘안연앓이’가 시작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결국 말을 신중하게, 그리고 경청과 실행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공자가 말한 ‘말은 어눌하지만 성실하게 실행하고자 한다’는 진정한 의미입니다.

 

 

[프로필] 조형권(나단) 작가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논어를 읽다》 출간, 교보문고 MD의 선택

•《적벽대전 이길 수밖에 없는 제갈량의 전략기획서》 출간, 교보문고 북모닝 CEO도서 선정

•《공부의 품격》 출간

•(현)SK그룹 내 마케팅 임원

•성균관대학교, EMBA 석사 졸업

•고려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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